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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잡설2012/01/19 23:54
정신차리고 보니 어느새 3주차......... 교육 1주 마치고 사회팀에서만 2주차를 맞고 있다.

설 연휴가 껴서 지금 당장은 여유가 좀 있긴 하지만(그래봐야 난 2시간 반짜리 녹음 파일을 녹취하고 있지만ㅜㅜ)

어쨌든 참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다음에는 인턴 열전이라도 블로그에 올려봐야지.

아 그전에

사람IN 아이템 발제나 성공해봐야지.........

천 선배의 한 마디를 잊을 수 없다ㅜㅜ

'2급 두 개 있다고 면제 되는 거 아니다'

.......

하아. 뭔가 화끈하고도 시의성있으며 멋진 아이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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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잡설2011/12/31 23:07
트위터 이상의 글쓰기가 매우 귀찮았던 관계로 + 여차저차한 사정이 겹쳐 사실상 버려두었던 블로그에 글을 씁니다.

아무래도 내년부터는 뭔가 글을 좀 끄적끄적 써야 이래저래 준비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새소식 하나.

2년 반 전, 저를 탈락의 슬픔에 울게했던 시사IN 인턴에 마침내 합격했습니다. 짜잔



감격의 눈물ㅜㅜㅜㅜㅜㅜㅜ 이 흐르는 동시에 대체 날 왜 뽑아주신건지....... 의문이 들며 앞으로의 인턴기자

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앞서네요..... 에고고

거기에 더해...........

사실 불안한 마음에(이번 겨울을 허송세월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를 만들어뒀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계절학기였고(이건 무사히 수강취소 완료. 물론 등록금 중 11만원은 허공으로 날아갔지만ㅜㅜ)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는데......



엄...... 역시 저를 뽑아주신 동아일보에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하나(?)

대체 근데 난 왜 뽑힌거지?? ........ 면접도 죽 쒔고..... 작문은 안드로메다였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우선 순위인 시사IN 인턴이 됐기에 동아일보 인사관리팀으로 전화를 해 개인적인 사정으로 못갈 것 같다고

말을 했더니 계속 어떤 사정인 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사IN 인턴에 합격해서요" 라고 했더니

"시사IN이요?????" 라며 매우 격한 반응을 보이는 상대방

음....... 이런 좌빨새끼(.........)를 왜 뽑았을까하는 억하심정이었던걸까..?

알고보니 마침 전화한날이 조선일보 인턴 합격자 발표날이었고, 담당자는 당연히 내 입에서 조선일보라는 이름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인 듯.

어허허허......



아무튼간에 1월 2일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놀려두었던 블로그를 그를 계기로 활성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으자자잣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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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잡설2010/07/06 17:50

2010년 사회학과&우리사이 여름농활대
여성 및 체조 주체 배정훈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슬슬 취업을 위한 스펙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기에 돌입하는 내가 열흘에 가까운 여름농활에 참여한다는 것은. 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장고를 거듭한 끝에 농활에 가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그리고 마지막. 결국 나를 농활로 끌어당긴 것은 사람을 항상 설레게 하는 이 두 단어였다.

 

ⓒ 안예하


여름 방학을 1개월여 앞둔, 이제 겨우 토플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있을 시점 즈음에 유정이의 문자를 받은 게 시작이었다. 사회학과와 우리사이가 함께 농활을 준비해 가려한다고,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이 나를 동요하게 했다. 뭐라고 말해야할까. 첫사랑의 기억과도 같은 우리사이의 이름이 나오면 왠지 나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게 된다. 사회학과의 낯선 얼굴들도 기대가 됐다. 거기에 더해 결정적으로 '농활'이다. 내가 우리사이와 사랑에 빠지게 해주었던, 많은 기억과 추억, 사람을 남게 해준 농활이다. 우리사이의 마지막과 사회학과의 처음을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나는 그저 가야겠다 싶었다. 그 후, 흘러가는 시간을 인식하지 못한 채 허우적댄 것이 얼마였을까. 나는 어느 샌가 논산 상월면의 가재울 마을에 두 발을 붙이고 서 있었다.

 

대학 생활을 여러 해 하다 보니 별 필요도 없는 걱정을 사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농활에 있어서도 그랬다. 밥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작업은 재미가 있을까, 평가는 원활하게 진행이 될까. 농활 대원의 반 수 이상이 새내기였고, 두 단체가 오며 함께 진행하는 농활이었기에 이러한 걱정들은 괜히 현실감 있게 다가오곤 했다. 하지만 역시나 기우였다. 나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가재울에서의 농활은 즐겁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갔다. 새내기들은 농활에서 새롭게 닥치는 상황에 겁을 먹기는커녕 어떤 상황에서도 덩실덩실 춤을 추며 어울렸고, 선배들도 단순한 방관자에 그치지 않고 그들 자체로 농활의 기류에 어울려 하나가 됐다. 우리의 몸은 고된 작업과 빡빡한 스케줄로 인해 너덜너덜해져갔지만, 마음만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작업과 함께하는 한줄기 노래, 농활 대원들끼리의 소통,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우리를 힘들게 해도 “바→이↘” 한마디로 그저 웃어넘길 수 있었다.


ⓒ 안예하

꿈같았던 시간들이 지나고 북적거리는 대도시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지금,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서있었던 논틀밭틀은 아련한 추억속의 거짓말만 같다. 내가 느꼈던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을 보며, 영상을 보며 기억을 곱씹고 곱씹지만, 결국 이 기억도 지금의 선명한 빛깔을 조금은 잃어버릴 것이다. 이렇게 나는, 즐겁고 행복했기에 충분히 마지막이 될 자격이 있는 이번 농활을 조금씩 떠나보내고 있다. 하지만 다음 해에, 또 다음 해에도 농활을 가는 이들이 우리와 같이 행복했던 기억의 자국을 매만져볼 수 있었으면 한다. 시간이 지나며 기억에 빛이 바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끔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기억의 손잡이를 되감아 놓자. 후배들에게 농활의 기억을 전하려 할 때 지나치게 느슨해져 있는 기억을 억지로 잡아당기느라 끙끙대지 않도록. 우리의 기억 조각이 그들에게 농활을 전하는 촉매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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