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대에서 특강중인 이소연씨 copyright by 경향신문)

 5월 12일, 이소연씨가 서울여대가 마련한 '미래를 여는 지성 아카데미' 특강에 '떴다'. 그는 세계에서 475번째, 여성으로서는 49번째,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우주의 드넓은 품에 안겼던 그야말로 역사적인 인물이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한국 우주사에 길이 남을 흔적을 남긴 이답게 지구로 귀환한지 1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이곳저곳의 행사와 방송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모양이다. 서울여대에서 기획한 이번 특강도 그런 행사 중 하나인 듯싶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여성' 재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성공담을 설파했다. 그는 고교 이후에 남자들에 둘러싸여 생활해오다보니 여대가 매우 낯설다며 “여성이라는 사실을 잊고 20여년을 산 것 같다”고 운을 뗀 후, “자신이 여자니까 차별당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면 이미 패배자”라며, “자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잊고 사는 게 성공하는 비결”이라고 자신의 소견을 당차게 밝혔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자신이 그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여자'임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자가 여자이면 성공할 수 없다?


 유교 사상이 여전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수치상이나 질적으로나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성공과 동일시되는 고위직 공무원이나 기업 CEO의 경우 여성의 존재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다. 이소연씨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별대우 받으려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에 임하라는 의미로 발언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그의 말에서 꺼림칙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이 사회가 여성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포기할 것을 강요하고 있으며, 사회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남성들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남성들은 오히려 그들의 남성적 정체성을 강화하고, 그들이 남성이라는 사실을 긍정함으로써 사회생활의 성공 루트를 만들어나간다. 자신의 가족과 인간관계를 제쳐두고 자신의 조직 단합대회에 참석해 의리를 지키는 '사나이'는 성공으로 가는 길에 한두 걸음 앞서고 있는 이를 이르는 또 다른 말이지 않은가? 하지만 여성들의 경우는 어떠한가. 남성적 가치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남성에 맞춰(혹은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거쳐 가는 군대 문화에 맞춰) 최적화 돼 있는 이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그들의 삶의 궤적을 상당부분 남성들의 문화에 맞춰야만 한다. 술자리에 참석해 남자 직원들의 비위를 맞추는 '꽃'이 되거나,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마저 잊고서 '명예남성'이 되어 남자 직원들의 음담패설에 맞장구를 치는 역할을 마다해선 안된다는 거다.

꽃이 되거나, 남자가 되거


 이소연씨의 이야기는 '일' 측면에 한정되어 있는 것인데 왜 그렇게 확대해서 이야기하는 거냐고 묻는 이가 있다면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만 잘하면 과연 성공할 수 있느냐고. 물론, 업무 면에서만 뛰어나도 일정 이상의 인정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뛰어난 업무능력에 국한된 이들은 '일벌레'라며 조롱받기 일쑤이지 않은가. 특히 여성이 뛰어난 일처리 능력으로 단연 돋보인다면, 이른바 '독한 여자' 취급 받는 것이 일상다반사이다. 결국, 사회에 진출한 여성은 그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느냐, 사회적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을 버리느냐의 양자택일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시대의 '사나이'들은 결코 경험하지 못하는 것인데 말이다.

 

 사실, 이것은 여성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남성들 중에서도 흔히 이야기되는 '사회 부적응자', 다시 말해, '가짜 사나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이들 역시 능력 여하와 상관없이 이른바 '사회생활'을 잘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배척당한다. 그런데, 그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상사가 부르면 재빨리 뛰어나가 그와 함께 술을 마시며 뒤치다꺼리를 하고, 다음날의 근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밤늦게까지 동료들과의 우정(?)을 나누는 것이 과연 그들을 즐겁게 하는 것일까. 그 조직의 구성원들을 괴로움으로 내모는 것이 진정 ,'사회생활'이라 할 수 있는가? 결국,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사회생활을 강요하는 이 사회 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이소연씨 : http://blog.daum.net/rlawogur119)


사회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잘못으로 전가해선 안돼


 이소연씨는, 여자라는 이유로 어려운 일에서 슬금슬금 빠져나가면서도, 사회적으로 성공을 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의 심리에 대해 일갈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자신은 그러한 일들에 대해 당당하게 맞섰으며, 결국 남들에게 인정받을 만큼의 성공을 거두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른바 '성공한 사람'으로서, 성공하기위해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버렸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얘기해서는 안된다. 다른 이들에게 성공을 위해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가라고 얘기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그것은, 성공이란 열매를 위해 이 사회의 여성들만이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을 정당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왜곡된 사회구조를 인식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 선행된다면 성공할 수 있다며 이 시대의 사회적 모순을 가려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소연씨는 자신을 여자로 보지 말고, 그저 한 명의 '한국사람'으로 생각해달라고 이야기하는 대신, 성공한 여성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가 포기한 것들을 다른 이들도 포기하라고 무책임하게 말하는 대신, 그가 여성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포기한 것들을 후배들이 포기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알 수 없는 틀로 똑같은 조건을 강요하여 많은 이들을 괴롭게 하고 탈락시키는 사회 대신에, 다양한 이들이 모여 그들의 다양성을 지키며 진정으로 조화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쓰는 것. 그것이 어려움을 딛고 성공한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이 해야 마땅한 일이며,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일 것이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121801265&code=100203

※ 따옴표로 처리되어 있는 이소연씨 발언은 모두 상기 기사에서 따온 것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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