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9. 10. 24. 00:00

아침 일찍부터 게임드라이브를 하기로 한 우리는 일찌감치 눈을 떴다.

 

전날 아프리칸 마사지(?)를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인지 잠은 포근히 잘 잤던 것 같다.

 

다소 쌀쌀한 마사이마라의 아침 공기를 뚫고 우리는 일단 조식부터 먹었다.

 

뭐 대충 먹을만 하군

스크램블드 에그에 베이컨, 햄은 물론이고 중국식 지단까지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날 먹은 중식이나 석식보다 조식의 퀄리티가 훨씬 좋았다.

 

 

 

얼른 짐을 챙겨 7시도 되기 전에 바로 게임드라이브를 하러 출발.

 

특히 육식동물들은 새벽 해뜰녘에 많이 볼 수 있다는 말을 먼저 들었기에 우리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얼룩말님들 하이. 톰슨가젤님도 하이..

온통 초식 동물들의 천국이었다.. 아마 어제부터 질리도록 본 '누'님들은

 

아예 찍지도 않게 되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드디어..

 

왔는가 닝겐

게임드라이브를 나선지 1시간 가까이 됐을 무렵 어제 멀리서 형체를 겨우 볼 정도로 영접했던 치타를 다시 만났다.

 

사진으로는 잘 표현이 안 되지만 왠지 표정이라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가까운 거리였다.

 

우리가 보고 있건 말건 유유자적 누워서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내시던 치타님들은

 

한참만에 귀찮은 듯 일어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근처에 누떼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오오 흔하게 보기 힘들다는 치타의 사냥장면을 볼 수 있는 건가하는 기대감이 우리 일행을 들뜨게 하는 순간이었다.

 

어흥(?). 아 근데 귀찮다 닝겐

갑자기 누떼로 돌진하는 치타.!

 

오오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서는 건가!

 

했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더 이상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어영부영 재미삼아(?) 누떼를 이리저리 몰기만 하는 듯했다.

 

가이드 폴의 말에 의하면 이미 어제쯤 사냥을 해서 배를 불린 것 같다고 했다. 아 눙무리...

 

다시 마라강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게임드라이브를 하며 폴이 처음 얘기했던 게 있다.

 

"빅5(버팔로, 표범, 코끼리, 사자, 코뿔소)를 다 보지 못할 수는 있다. 특히 표범과 코뿔소는 못 볼 수도 있다.

 

다만 마사이마라는 '사자의 땅'이다. 사자는 실컷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 일행은 사파리가 끝날 때까지 결국 표범과 코뿔소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마사이마라가 '백수의 왕' 사자의 땅이라는 그의 호언장담은 거짓이 아니었다.

사자의 땅 마사이마라

응달에 누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하는 듯한 숫사자를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에서 만난 거였다.

 

아니 저렇게 게으르게 늘어져 있는 게 백수의 왕이라고..?

 

온갖 게임드라이브 차량들이 모여 들어 자신들을 보고 있는 것에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렇다. 그들의 심드렁함만큼은 확실히 왕의 위엄(?)에 가까워 보였다.

 

 

 

 

출발한지 세 시간여 만에 우리는 마사이마라 한복판에 발을 디뎠다.

 

자 없는 거 빼고 다 있습니다

마사이마라 한복판에 있는 커다란 장에서였다.

 

늘어선 물건은 주로 나무로 만든 동물인형이나 그릇따위였는데,

 

만듦새가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사파리 투어를 즐기는 여행객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충분한 것들이었다.

 

마사이마라 방문 기념품을 이곳에서 사리라 마음먹었던 윷긩은 이곳에서 기린 두 마리와 그릇 하나를 업어왔다.

 

구입한 것들을 여행 메이트 아흐메드 형제에게 보여주며, 이거 두 개 합해서 2200실링에 샀다고 하니

 

그거 자기들 고향 몸바사에 가면 반값에 살 수 있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줬다(....)

 

아무렴 어떤가.

 

드넓은 평원과 윷긩

날씨는 눈이 시릴만큼 좋았고, 어느쪽으로 봐도 그림이었다.

 

한국에서는 쉬이 볼 수 없을 그 풍경에 우리 부부는 모두 압도가 돼 버렸다.

 

다시 한 번 우리가 아프리카 대륙에 와 있다는 걸 실감케하는 순간이었다.

 

 

빅5 치고는 자주 만나는 버팔로와 사자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버팔로와 외로운 암사자를 지나쳐 계속 마라강으로 향했다.

 

여전히 길은 몹시 험했지만, 가이드 폴의 환상적인(?) 드라이빙 덕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아니,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 차가 갑자기 왜 이래..

얕은 웅덩이를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나름 사륜구동(?) 마개조를 자랑하던 우리 차가 마지막 문턱을 넘지 못하고 퍼져버린 거였다.

 

폴이 차 아래로 들어가 조치를 취하고,

 

우리 일행이 모두 차를 밀어 올려보겠다며 달라붙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폴이 근처를 지나던 차에게 SOS콜을 쳤고

 

랜드크루저가 견인해준 덕에야 거의 몇십 분 만에 트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게임 드라이브를 하는 내내 중간에 퍼져버린 차들을 보며 저 차는 왜 저럴까 안타까워했었는데..

 

그래도 이 한 번 외에는 차가 크게 말썽을 부린 일이 없었으니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었던 것 같다.

 

랜드크루저.. 차 차 찬양

슬슬 배가 고파질 무렵. 우린 마라강 유역에 도착해 준비해온 런치박스로 끼니를 해결했다.

 

쥬스에 빵, 닭고기 등으로 구성된 간단한 식사였는데, 시장이 반찬인지 꽤 먹을만 했다.

 

다만, 미친듯이 꼬여드는 파리떼가 문제였을 뿐..

 

정말이지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파리떼가 꼬여들어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워야 했다.

 

그래도 배에 뭐가 들어가니 좋다고 웃어본다
이분으로 말할 거 같으면 탄자니아-케냐 국경선 역할을 하는 돌덩어리 되시겠다

출발한지 여섯시간 만에

 

우리는 오늘의 반환점이라 할 수 있는 마라강에 도착했다.

 

마라강은 마사이마라 인근을 흐르는 강으로

 

8월쯤 누떼가 강을 가로질러 세렝게티에서 마사이마라로 이동하는 장관을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실 우리 부부가 세렝게티 대신 마사이마라를 선택했던 것은

 

가격적인 차이도 있었지만(대체로 세렝게티 투어가 더 비싸다) 8월 마사이마라 성수기를 상징하는

 

누떼의 이동을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마라강, 그곳은 하마님의 나와바리

누떼가 이동하는 모습은 눈곱만큼도 볼 수가 없었다.

 

폴에게 물어보니 요즘들어 누떼가 이동하는 시즌이 7월로 당겨졌다고 한다.

 

어쩐지 마사이마라에 누떼가 이미 차고 넘친다 했다..

 

대신 악어와 하마는 꽤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마라강 투어(?)는 원래의 가이드가 아닌 마라강 유역을 지키는 군인(투어 후 팁을 인당 1달러 정도 줘야 한다)에게 받는데,

 

그에 따르면 마라강의 지배자는 하마 가족들이라고 했다.

 

이들은 강에 저마다의 경계선을 그어놓고 구역을 설정하는데, 가끔 이 구역을 확장하고 축소시키기 위한

 

싸움도 일어난단다.

 

아래 사진 돌무더기에 퍼져 있는 하마는 그 싸움의 패배자가 되시겠다.

 

뭔가를 호시탐탐 노리는 듯한 악어와 패배자 하마

근데 우리에겐 하마가 참 신기하다며 눈을 반짝일 새도 마땅치 않았는데..

 

점심 먹을 무렵부터 계속된 그놈의 파리 어택 때문이었다.

 

이 잎사귀엔 슬픈 전설이 있어(feat. 파리 퇴치기)

쫓아내면 달려들고, 쫓아내면 달려들고

 

정말이지 쉴새 없이 날아오는 파리떼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파리 퇴치용 잎사귀를 흔들어봐도 잠시 그때뿐.

 

날씨는 미친 듯이 덥지 파리떼는 미친듯이 꼬이지..

 

지금 생각해보면 사진이라도 몇장 찍은 게 용하다 싶다.

 

파리... 파리 놈들.. (안경 더러움 주의)

괴로움의 화룡점정은 화장실에서였다.

 

마라강 투어 시작때부터 참아왔던 화장실행을 끝날 때쯤 겨우 감행할 수 있었는데

 

문도 엉성하게 달려있는 푸세식 화장실에 응아(?)가 철푸덕 내려앉아 있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급했던 누군가가 조준(?)을 잘못한 모양인데...... 아이고 내 눈아..

 

무사히 볼일(작은일이었다!!)을 마치고 나왔지만 그 일은 트라우마로 남았고,

 

훗날 조준이 잘못된 누군가의 대변은 우리 부부에게 '마라강의 응아' 사건으로 남았다.

 

버팔로 뼈가 인상적. 마라강 인근 곳곳에 널부러져 있기도 하다

마라강을 찍고 돌아오는 길도 오늘 하루종일과 마찬가지였다.

 

슬슬 이때부터는 경이로운 풍경보다 몸의 피곤함이 앞서기 시작했던 것 같다.

 

드넓은 마사이마라가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거였다.

 

어디 뭐 색다른 것 없나..
심바와 품바

그런 풍경을, 그 동물들을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하지만 당시에는 연이은 일정에 지쳐서인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두 달이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는 덜그덕덜그덕 거리는 아프리칸 마사지마저 그립지만.

 

 

 

롯지에 돌아오면서 10시간여 넘게 이어진 사파리 일정을 마친 우리는

 

오자마자 전기주전자를 공수해 라면으로 주린 배를 채우기 바빴고,

 

두 시간 뒤에 저녁도 또 먹었는데

 

사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적당히 즐기며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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