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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6.03 "우린 안될거야, 아마."에 숨어 있는 코드 읽기 2

 

“우린 안될거야, 아마.”


 얼마 전, 그룹 '타바코 쥬스'의 보컬 권기욱이 그가 소속된 루비살롱 레코드의 다큐멘터리 예고편에서 내뱉은 이 한 마디가 패러디의 소재 등으로 활용되며 인터넷 상에서 큰 화제를 뿌렸다. 네티즌들은 그의 자조적인 웃음과 시니컬한 대사에 열광하며 각종 패러디를 양산했고, 이것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처음 패러디물이 등장하기 시작한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그 기세는 여전하다. 스포츠, 정치, 사회 분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패러디물들은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무엇이 많은 이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했을까? 단지, 권기욱이란 이가 표현한 방법이 주는 재미가 네티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을 뿐일까. 대학생 김모군은 패러디물들을 보며 느낀 감상을 묻는 질문에 “그 것(패러디물)을 보면서 웃음이 난다는 상황이 참 슬펐다.” 라며,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페이소스(비애감)가 느껴졌다.” 라고 답했다.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단순히 재미라는 측면에서만 이 현상을 보는 것은 핵심을 비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디씨뉴스)


재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 있어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에 청년 취업자 수는 50여만명이 감소하였고, 청년층의 비경제활동 인구 비율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 2008년 현재 55.2%에 달한다. 하지만, 실상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취업자로 집계되는 이들 중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고, 비경제활동 인구 중 많은 수가 자발적이지 않은 실업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청년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자조적인 한숨을 내뱉을 만한 상황이다.


 청소년들의 경우도 역시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자사고, 특목고에 대한 공약들이 남발되고, 국제중 등의 설치가 확정되면서 많은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시사IN의 보도(89호)에 따르면 서울 강남 소재의 모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현재의 꿈으로 서울대(명문대) 진학을 꼽은 아이들이 응답자 26명 중 7명에 달했으며, 현재 소망하는 것이 국제중 ․ 특목고 진학이라 대답한 아이도 17명 중 4명이나 됐다. 아이들의 '꿈이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초중고 학생들은 전국의 또래 아이들을 일렬로 세우려는 욕망의 발로인 일제고사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었고, 그에 반대해 체험학습을 권유하였던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아야했다.


고립무원 상태에 있는 청년, 청소년층


 모든 것이 어렵게만 돌아가는 현 상황의 절정이라 할 만한 것은 5월 23일, 토요일 아침에 전해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었다. 정치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의 저인망식 수사에 의해, 그 너머에 있는 현 정권의 국면 전환에 대한 의지에 의해서였다. 그로 인해, 생활인으로 돌아가려 했던 전임 대통령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이 시대를 휩쓸고 있는 자조감의 절정인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전환점이기도 했다. 그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슬퍼하는 이들이 그동안 쌓여왔던 암울한 기운을 긍정의 에너지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대한문 앞의 시민 분향소를 만든 것도, 봉하마을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발길도, 서울 광장을 가득 메운 노란 두건과 넥타이 차림의 모습도 모두 이대로 주저앉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우린 안될거야, 아마.”는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로 바뀌었고, 자꾸 나빠만 지는 현실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과 분노를 품게 만들었다.


부정의 에너지가 긍정의 에너지로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어렵다. 미래를 펼쳐 가야할 청년들과 청소년들에겐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우린 안될거야, 아마.”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고 느낀 이들이 분연히 일어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들의 각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감히 그의 '선물'이라 할만하다.

 

 처음 시작될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권기욱의 한마디는 꾸준히 인터넷 상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언젠가부터 자조적이고 무기력한 투의 패러디들보다는, 신랄하게 현실을 비꼬는 것들이 눈에 띄는 것이 반갑다. 마지막으로, 여러 사람들을 시원한 기분에 젖게 해주는 듯한 한 작품(경찰청장 버전)을 소개하며 이 글을 갈무리 하려한다.


“내가 요즘 로봇수사대 K캅스를 보고 있는데, 느낀게...

존나 열심히 시민들을 위해야 할 거 같아.

그런데 우린 열심히 패버리잖아?

우린 안될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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