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안될거야, 아마.”


 얼마 전, 그룹 '타바코 쥬스'의 보컬 권기욱이 그가 소속된 루비살롱 레코드의 다큐멘터리 예고편에서 내뱉은 이 한 마디가 패러디의 소재 등으로 활용되며 인터넷 상에서 큰 화제를 뿌렸다. 네티즌들은 그의 자조적인 웃음과 시니컬한 대사에 열광하며 각종 패러디를 양산했고, 이것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소재로도 활용되었다. 처음 패러디물이 등장하기 시작한지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그 기세는 여전하다. 스포츠, 정치, 사회 분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패러디물들은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무엇이 많은 이들을 그토록 열광하게 했을까? 단지, 권기욱이란 이가 표현한 방법이 주는 재미가 네티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을 뿐일까. 대학생 김모군은 패러디물들을 보며 느낀 감상을 묻는 질문에 “그 것(패러디물)을 보면서 웃음이 난다는 상황이 참 슬펐다.” 라며, “무엇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한 페이소스(비애감)가 느껴졌다.” 라고 답했다.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단순히 재미라는 측면에서만 이 현상을 보는 것은 핵심을 비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디씨뉴스)


재미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 있어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에 청년 취업자 수는 50여만명이 감소하였고, 청년층의 비경제활동 인구 비율은 날이 갈수록 늘어나 2008년 현재 55.2%에 달한다. 하지만, 실상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 취업자로 집계되는 이들 중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고, 비경제활동 인구 중 많은 수가 자발적이지 않은 실업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청년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자조적인 한숨을 내뱉을 만한 상황이다.


 청소년들의 경우도 역시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자사고, 특목고에 대한 공약들이 남발되고, 국제중 등의 설치가 확정되면서 많은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시사IN의 보도(89호)에 따르면 서울 강남 소재의 모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현재의 꿈으로 서울대(명문대) 진학을 꼽은 아이들이 응답자 26명 중 7명에 달했으며, 현재 소망하는 것이 국제중 ․ 특목고 진학이라 대답한 아이도 17명 중 4명이나 됐다. 아이들의 '꿈이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초중고 학생들은 전국의 또래 아이들을 일렬로 세우려는 욕망의 발로인 일제고사에 무분별하게 노출되었고, 그에 반대해 체험학습을 권유하였던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쫓겨나는 것을 보아야했다.


고립무원 상태에 있는 청년, 청소년층


 모든 것이 어렵게만 돌아가는 현 상황의 절정이라 할 만한 것은 5월 23일, 토요일 아침에 전해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이었다. 정치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의 저인망식 수사에 의해, 그 너머에 있는 현 정권의 국면 전환에 대한 의지에 의해서였다. 그로 인해, 생활인으로 돌아가려 했던 전임 대통령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이 시대를 휩쓸고 있는 자조감의 절정인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 전환점이기도 했다. 그의 안타까운 마지막을 슬퍼하는 이들이 그동안 쌓여왔던 암울한 기운을 긍정의 에너지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대한문 앞의 시민 분향소를 만든 것도, 봉하마을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발길도, 서울 광장을 가득 메운 노란 두건과 넥타이 차림의 모습도 모두 이대로 주저앉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로였다. “우린 안될거야, 아마.”는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나.”로 바뀌었고, 자꾸 나빠만 지는 현실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과 분노를 품게 만들었다.


부정의 에너지가 긍정의 에너지로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어렵다. 미래를 펼쳐 가야할 청년들과 청소년들에겐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우린 안될거야, 아마.”에 갇혀 있을 수는 없다고 느낀 이들이 분연히 일어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그들의 각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감히 그의 '선물'이라 할만하다.

 

 처음 시작될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권기욱의 한마디는 꾸준히 인터넷 상에서 재생산되고 있다. 언젠가부터 자조적이고 무기력한 투의 패러디들보다는, 신랄하게 현실을 비꼬는 것들이 눈에 띄는 것이 반갑다. 마지막으로, 여러 사람들을 시원한 기분에 젖게 해주는 듯한 한 작품(경찰청장 버전)을 소개하며 이 글을 갈무리 하려한다.


“내가 요즘 로봇수사대 K캅스를 보고 있는데, 느낀게...

존나 열심히 시민들을 위해야 할 거 같아.

그런데 우린 열심히 패버리잖아?

우린 안될거야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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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고인이 된 아버지가 소떼를 몰아 방북하여 남북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튼 것을 까맣게 잊어먹은 탓인지, 이 상태로 가느니 개성공단을 포기해야한다는 논지의 발언을 했던 정몽준 의원님께서 또 한 번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주셨다. 정 의원님 가라사대 "노 전 대통령의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고인이 바라는 국민 화합에 맞지 않는 것(경향신문 5월 26일자 7면)“이란다. 정신이 번쩍 뜨이는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기에 앞서 비극적인 사실 자체에 슬퍼하던 이들조차 정신이 번쩍 뜨여 손바닥을 딱 소리나게 맞부딪칠 지경이다.

 아무래도 이전의 발언이 그러하듯, 자신의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앞장서서 이런 발언을 하시는 모양이다. 확실히 다른 이들에 비해 부각돼 보이니 일정부분 그분의 의도가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현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주자 중 한 명 이라면, 자신의 보수적 색채를 선명히 눈에 띄게 하는 것이 앞으로의 발디딤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엔 좀 갈 길을 잘 못 드셨다.


(가수 비와 함께. 출처 : 정몽준 의원 팬클럽 홈페이지 : http://www.mj21.org/)


대선주자로서의 선명성 강화? 글쎄 이건..


 두 사람이 싸웠다. 한 사람은 지금의 동네 이장과 친한 청년회장이고, 한 사람은 전임 이장이다. 청년회장은 현 이장과 전 이장의 사이가 좋지 않은 걸 눈치 채곤 이장 등 긁어주는 심정으로 전임 이장을 마구 때렸다. 전임 이장은 이유야 어찌됐든 자신이 맞은 일이 너무나 분하고 원통해서 한참을 고민하다 세상과의 인연을 끊어버렸다. 온 마을이 추도의 분위기로 가득한데, 옆에서 차기 이장을 노리는 마을 유지가 침을 눈에 찍어 바르며 얘기한다. 안타깝지만 지난 일이니, 다 잊고 다시 한 번 잘 살아보자고.


 만약, 마을 유지의 말대로 그저 다 잊고 잘 살아보자며 전임 이장의 죽음을 덮어버린다면,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먼저, 차분한 마음으로 고인의 죽음을 애도한 뒤에,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 원인을 찾아보려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왜 청년회장이 마을 이장의 비위를 맞추려 했던 걸까. 혹시, 청년회가 이장의 뜻대로 좌지우지 되는 조직은 아니었는가. 전임이장이 그러한 이유 때문에 청년회를 마을 유지들과 심지어 자신의 손에서부터도 독립시키려 했던 것은 아닌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하지 않겠는가.


 혹여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 중 한 분이신 정몽준 의원님을 기껏 마을 유지에 빗대 얘기하였으니 무슨 불호령이 떨어지랴 하고 누군가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국회의원을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게 역임하고 계신 분께서 그리 쩨쩨하진 않으시겠지. 그런 의미에서 한 마디만 더 던져 보려한다.

 

정몽준 의원님. 정신 차리소서!

 정몽준 의원님. 진심으로 차기 대권을 생각하신다면 자신이 속한 집단의 허물을 덮으려만 하지 말고 반성하는 법을 배우시는 게 어떠할까요? 제 짧은 소견으로 감히 말씀드리자면, 무리한 발언으로 보수적 색채를 강화하려 드시는 것보다는, 반성할 것은 반성하자는 솔직한 태도가 오히려 의원님의 앞날에 더 도움이 될 듯합니다. 물론, 온 동네를 뒤집어엎는다는 확인되지 않은 약속의 힘을 빌지 않고는 자신의 앞마당을 떠난 곳에서 국회의원 한 자리 하기 어려우신, 본인 자신의 좁은 역량을 키우시는 일을 선행하셔야 하겠지만요.

 



 

 이상의 졸렬한 글을 6선에 빛나는 국회의원이자 집권 여당 최고위원이신 정몽준 의원님과,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자꾸 그분을 죽음으로 내몬 사항을 따지다보면 또 다른 원망과 사회혼란이 커질 것”(경향신문 5월 26일자 7면)이라며 정 의원님께 힘을 보탠 한나라당 김성태 의원님께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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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잡설2009. 5. 25. 12:28

(노 전 대통령 공식 영정 사진. 출처 : 사람 사는 세상)

아무래도 내 심약한 성격 탓이겠지만
그가 처했을 상황을 생각하면
그가 부엉이 바위 위에서 떠올렸을 일들을 생각하면
눈가에 눈물이 핑 돈다.

무엇이
도대체 무엇이 퇴임한지 1년 반이 조금 지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을까.

그가 온전히 잘못만을 범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가 한 모든 일이 올바른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표현한
압박감이 그를 짓누른 것은 무엇때문일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재임시절 그토록 열정을 가지고 추진했던
검찰의 탈권력화, 탈권위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조용히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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