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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13 자전거로 서울에서 구미까지 3일차
여행2013. 7. 13. 20:23

여행 3일차 (7월 3일 수요일)


드디어 그 날이 밝았다. 여행 첫날부터 꾸준히 우리의 입에 오르내렸던 최대의 난적 '이화령'을 넘기로 한 날이.....


느지막히 일어난 우리는 어제 사둔 라면과 소세지로 아침 식사를 간단히 성대하게 치르고


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 가시냐는 프론트 직원의 안쓰러운 따스한 웃음을 뒤로 한 채 자전거에 올랐다.


수안보 온천지구를 벗어나자마자 심상치 않은 업힐이 우리를 덮쳤다. 미리 검색을 통해 확인한


이화령 동생(.....) 소조령이 시작된 것. 업힐을 할 때마다 내 자전거의 7단 기어는 참 야속했다. 분명히 1단 밑에


0.5단쯤은 하나 더 있어야 할 거 같은데........ 하지만 한 번의 웬일로 이후땡이 허락한(이 때 알아챘어야 하는데....)


짧은 휴식과 함께 생각보다 가뿐하게 소조령을 넘을 수 있었고, 이후로 이어지는 신나는 다운힐 또한 즐길 수 있었다.


(검색을 통해 알아봤을 때는 이화령 가기 전 비포장길이 나온다고 했었는데..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우리 앞에 펼쳐진 끝없는 오르막길. 이화령의 초입임을 직감한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짧은 휴식과


정비의 시간을 보냈다.



이화령을 앞두고.. 그의 요염한 스트레칭


(알고보니 이후땡의 고관절 및 무릎 통증은 잘못된 안장 위치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화령 초입에 안장 위치를 수정한


후 그는 더 이상 고통에 시달리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좀 나았다고 한다)


여행 3일째에서야 비로소 맞이하는 쏟아져내리는 미친 햇살을 맞으며


아마도 커플끼리 함께온 듯한 여행객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우리는 (다음에는 꼭 여자친구랑 와야지..... 되뇌이며)


이화령을 정복하는 길을 마침내 나섰다.


사실 무릎이 거의 아작(....)이 난 상황이었기에, 나는 급한 경사가 펼쳐지면 포기하고 끌고 올라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화령느님...... 의 경사가 별로 가파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더도말고 덜도 말고 내 한계치인


10도 정도의 경사였다. 하지만 완만한(?) 경사도 계속되면 미칠 듯이 힘든 법. 5km 정도 되는 이화령 업힐을 반쯤


소화했을 때 이제는 한계다 싶어서 나는 후땡이에게


"잠깐만 쉬었다 가자........"고 애원을 한다. 하지만 그는........ 그는.......


한 번 해보자며 그 때부터 "하나 둘 하나 둘" "다 왔다 다 왔다"를 외치기 시작했다.


오...... 하느님 OTL


분명 한계치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오기와 깡으로


한 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오기에는 정상에서 싸다구를 한 대 날리게 해주는 다는 후땡이의 약속이 큰 영향을


결국 40여분만에, 이화령을 논스톱으로 정복하고야 말았다. 아싸 싸다구!!!!!!




환희의 이후땡



나자빠진 나



명박느님이 대운하를 뚫다 말아 햄볶아요



정말 다른 이들이 말했던 이화령 정복의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아..... 이 맛에 업힐 하는구나 싶은?


물론 두 번은 못하겠더라. 인증하고 사진찍고 음료수 마시고 정자에서 한량짓을 하며 한참을 여운에 잠겨 있었다.


자.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는 법. 앞으로 이어질 신나는 다운힐에 환희하며 우리는 여행 3일 만에 마침내


경상북도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내리막이 너무 급하니까 브레이크를 잡아대느라 손만 얼얼하고....


다운힐의 쾌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OTL. 오히려 내리막이 끝나고 나서 신나했을 정도.


그리고 우리는 거의 한강변에 버금가는 편안한 길을 마음껏 달리며.. 쏟아지는 햇살에 거의 익을 뻔했다. OTL


문경 불정역 인증센터에 도착했을 즈음(오후 1시경)에는 거의 살이 다 녹아내릴 듯한 더위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중간중간 부지런히 쉬며 몸을 추스르고, 그늘 쪽을 골라 다니며 자전거를 달린 결과 오후 4시가 돼서야


문경 점촌역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내 무릎이 완전히 박살이 났음을 직감했다OTL


자전거를 탈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자전거에 내리면 절뚝절뚝 다리를 저는 지경이 된 것.


아무튼 문경 시내쪽에서 밥을 먹을 곳을 찾았으나,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헤매던 우리는, 문경에 위치한 미스터피자!!를


운명처럼 만났다. 물론 평소에 피자덕후인 내가 피자에 끌린 탓도 있었지만, 쏟아져내리는 폭염에 몇 시간을 내려쬐인


우리가 마음껏 에어컨을 쐴 수 있는 곳이라는 점에 완전히 꽂혔다. (사실 예산 문제도 있고 좀 저어할 부분이 있어서


이후땡은 별로 끌리지 않았던 것 같지만....) 정말 시끄러웠던 문경 꼬마 숙녀들의 수다에도 불구하고 피자를 폭풍 흡입하며


몇 시간 만에 맛보는 에어컨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미스터피자 사랑해요



음.... 이맛이야


다시 자전거를 타고 자전거길로 복귀한 것은 오후 5시가 넘어서였다. 해가 지기 전에 최소한 새재길을 벗어나야 하는


우리는 빠듯한 일정을 극복하기 위해 미친듯이 페달을 밟아야 했다. 그런데.... 문경 시내를 벗어나자 거짓말처럼


여태 잘 보이지 않던 업힐 구간이 우리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봐 내 무릎은 맛이 갔다구


마지막 힘을 다 짜내 겨우 새재길의 마지막 인증센터인 상주 상풍교에 도착했을 무렵. 나는 아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무릎 통증을 느껴야했다. (이후땡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군(.........))


하지만, 당장 잘 곳을 찾으려면 수 km 떨어진 경천대 부근까지 가야하는 상황. 잠깐의 휴식 뒤에 우리는 또다시


길을 나섰고, 그곳에서 이후땡을 좌절시킨 역대 최악의 업힐을 만나게 된다.


사실 충주댐이고, 이화령이고 힘들지 않았을 리는 없지만, 지금까지 이후땡은 단 한 번도 업힐 와중에 포기하고


자전거에서 내린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경천대로 가는 길은........ 상상을 초월하는 그 무엇이었고


18단 기어 미니벨로형 자전거의 소유자 이후땡은 마침내 자전거에서 내려야만 했다.


"ㅅㅂ.... ㅅㅂ...... ㅅㅂ......"


그의 입에선 특정 초성으로 시작되는 말이 난무했고, 애초에 포기하고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던 나조차도 힘에 부칠 만큼


경천대 초입의 경사는 그야말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겨우겨우 고난을 극복하고 상풍교에서 봐둔 경천대 모텔을 찾아가는 와중에 경천대 유원지에 잘못 들어갔다 나오는


뻘짓을 한 이후에야, 해가 다 넘어가 라이트 없이는 주행을 하기 힘들어질 저녁 8시가 넘어 우리는 경천대 모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방을 잡고 나와 안내에 따라 자전거를 실내에 넣어두고 모텔에 딸린 식당에 가서 저녁을 해결했다.


백반부터 시작해서 훈제오리까지 주문할 수 있는 모양이던데, 미스터 피자를 다녀온 덕에


지갑이 얇은 우리의 선택지는 6000원짜리 백반 두 개....


거기 더해 경주법주 막걸리 한 병과 빈대떡 정도였다. 돼지들 아니랄까봐


우리는 한참 밥을 먹으며 술 한 잔 기울이던 도중, 혼자 온 듯한 자전거 여행객을 만났다.


어찌어찌해서 우리는 술을 한 병 더 시켜 그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웠다. 알고보니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은 형이었고,


3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을숙도까지 여행 중이라고 했다. (나랑 한 살 차인데 직장 경력이 3년차라니 OTL


날 백수는 웁니다.) 첫날 일정이 차질이 빚어져 충주에서 하루만에 이곳까지 당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 이후땡은


경탄의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대애바악......


여행에서의 우연한 만남에 신이 난 우리는, 결국 방으로 옮겨 맥주 5병을 나눠마시고야 그날 밤을 끝냈다.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여행자들끼리의 즐거운 만남은 아쉬운 술상에도 불구하고 모두를 얼큰하게 취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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