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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11 3.4초 일본 여행기 마지막날
여행2016. 5. 11. 22:00

드디어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다. 원래는 8시쯤 일어날 계획이었지만 몸이 천근만근인 관계로 다소 늦어진 기상 시간. 그동안 우리를 집처럼 품어준 신주쿠 숙소를 아쉬운 마음으로 떠나며, 놀며 보내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안녕 신주쿠. 언젠간 또 만납시다)


이날 우리의 계획은 종환이가 꼭 가보고 싶다는 츠키지 시장을 거쳐 지바 마린스 필드로 가 둘째날 "후지큐 하이랜드의 난"으로 밀린 야구장 관람을 마치는 것. 체크아웃을 하고 가는 것이었기에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짐을 둘 곳이 굉장히 중요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 이 시간에 왜이렇게들 많으신거죠?)


겨우 도착한 시장에는 사람이 넘나 많은 것이었고, 츠키지시장 주변의 지하철 역에는 코인락커가 없었다(....) 그나마 짐 둘 모두가 배낭이었던 난 좀 나았지만, 저 사람떼들 사이에 트렁크를 끌고 다녀야 했던 종환이와 기범이는..


(ZONA 힘들었다고 합니다)


매우(!) 힘들었다. 결국 시장 안쪽으로 들어갈 생각도 못한 채 헤매다 그나마 입구쪽에서 가장 가까운 스시잔마이 본점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유명 프랜차이즈의 본점이라 그런지 그 북적거리는 시장 한 가운데에서 줄을 30분쯤 서서 기다려야 했다.


(뭐.. 우리 줄서는 거야 어제부로 마스터 했으니까. 어라. 그런데 어디선가 본 익숙한 얼굴이..)


(이경재 원장님 일본 진출하셨나효?)


어느덧 30여분 여를 기다려 스시집 입성. 갓본의 스시는 어떨까 궁금증을 가득 품고 두근두근 스시를 기다렸다. 그리고 일본에 가서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는 그 스시님을 영접!


(스시님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와구와구 흡입. 맛있었다. 그런데 말로 전해들었던 것처럼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든지 하지는 않았다. 일본통 종환이 말에 의하면 최고급 스시는 아닌 것 같다고. 우리나라 초밥보다 좀 더 눅눅한 느낌이었는데, 원래 일본 스시가 이런 건가? 어쨌든 즐겁게, 또 맛있게 먹었다. 다음에 일본에 올 때는 더 맛있는 걸 먹을 수도 있을까? 어쨌든 무사히 식사를 마시고 급하게 츠키지시장 기행을 마무리한 우리는 입에 모찌 하나씩 물고 지바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300엔짜리 탐스러운 모찌님)


지바는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 애초에 삿포로행이 무산됐을 때부터 계획했던 지바행이었는데 아침부터 캐리어를 질질 끌고 다니느라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설레는 마음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반쯤 졸며, 반쯤 관성적으로 JR을 타고 1시간쯤. 우리는 지바에 도착해 내렸다.


(지바 역전. 묘하게 도쿄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어서와 지바는 처음이지?)


야구장이 가까워서 그런지, 역앞부터 장식돼 있는 야구 관련 조형물. 일본 답게 매우 모에모에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조형물 세울 돈으로 코인락커 몇 개 더 만들어줄 수는 없는 거였을까(....) 지바까지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온 우리는 어차피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야구장을 들렀다 다시 지바역으로 돌아와야 했기에 원래 이곳에 짐을 맡겨두고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역 구석에 있는 코인락커가 정말이지 죄다 차 있는 것 아닌가. 대략 난감.... 야구 경기 시작 시간은 다가오고... 락커를 더 찾아볼 기력도 시간도 없었던 우리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그냥 짐을 들고 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러고보면 '당연히 되리라 생각했던 것이 안 되는' 상황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롯데 롯데 롯데 롯데♬)


 (QVC 지바 마린스 필드에 어서오셔유)


시간이 임박해 도착했기에 부랴부랴 티켓을 끊으러 갔다. 일본 여행 내내 우리들 내에서 일본어를 담당했던 우종환 선생의 위엄으로 티켓을 구해 입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애초에 티켓을 다시 끊고 야구 관람일을 바꿀 수 있었던 것자체가 종환이의 공로였다) 입장하며 당연하게도 코인락커부터 찾은 우리.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스탭에 이끌려 코인락커 앞으로 갔는데... 역시나 이용할 수 있는 락커는 별로 없고, 그나마 있는 락커는 너무 작아서 우리 짐이 들어가지 않는 상황(....) 진짜 욕설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별 수 없이 짐을 질질 끌고 우리 좌석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갔는데, 거기서 만난 스탭이 야구장측에서 아예 짐을 맡아준다는 것을 알려줘서 겨우 무겁디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짐 질질 끌고 다니는 사진이 단 한 장이 없다는 것이 그 당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드디어 드디어 야구장 입ㅋ성ㅋ


(어라 야구장이 왜 이렇게 희한하게 생겼지?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사실 짐을 맡기고 바로 오오타니의 유니폼을 사서 입고 응원을 할 생각이었는데, 유니폼이 카드 결제가 안 된단다. 닛폰햄 유니폼이 엄청 유니크하고 예뻐서 꼭 사고 싶었는데ㅜㅜ 아쉬운 마음을 접어두고 좌석에 들어가기 위해 먹거리를 좀 사려고 했는데 어라. 이것도 카드가 안 된단다. 환전해온 돈은 돌아갈 차비를 제외하면 다 떨어져 없는 상태였고, 영어가 잘 안통해 확실하지는 않지만 주변에 ATM도 없다는 것 같은데.... 그럼 우리는 야구 보는 3~4시간 동안 공복 상태로 있어야 하나?.. 점심도 안 먹었는데?!


게다가 흐린 날씨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구장에서 느껴지는 한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바로 외야 너머에 있는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해풍 때문었는데, 알고보니 마린스 필드는 해풍을 막기 위해 좋은 풍광을 포기하고 저렇게 세미돔 느낌으로 지어진 것이었다.


배는 고프고, 먹을 것이라고는 얼떨결에 무사히 가지고 들어온 정종 한 팩과 맥주 한 캔 밖에 없는 상황. 일단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일어나왔다. 그리고 영어 안 통하는 구장 직원을 붙잡고 한참 설명을 했는데..


"크레디토 카도. 오케이 샵. 아리마셍?????"


되지도 않는 일어로 한참을 씨름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영어를 그나마 좀 할 수 있는 직원이 나타났고, 그 직원에게 대충 상황을 설명하자 중국 음식도 괜찮느냔다. 지금 일본에서 중국 음식 먹겠냐고 투정부릴 땐가. 무조건 오케이를 외치니 따라오래서 따라갔는데... 그곳에서 믿지도 않은 신을 찬양할 뻔 했다.


(할렐루야!!!!! 크레디토 카도 오케데스입니다)


플러스 알파로 베이지색 모자를 쓴 점원은 영어도 그럭저럭 통하였다. 감탄하여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치킨 가라아게와 술을 시키려는데, 어라 따뜻한 정종도 있다고?!


(호뜨 사케 반자이!)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이것저것 사서 좌석으로 갔다. 종환이와 기범이는 내가 한참 안오길래 이 인간이 야구장 밖에 나간 줄 알았다고... 어쨌든 셋 다 감격스러운 마음은 매한가지였고,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한 번 더 사와서 또 와구와구 먹었다.


먹을 게 좀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져 즐겁게 야구 관람. 사실 오오타니는 우리가 간 다음날에 선발 예정이라 타석에서조차 볼 수 없었지만, 의외의 반가운 인물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바로...


(힛또 나바로~)


삼성에서 개그와 수비, 홈런을 담당했던 야마이코 나바로. 그러고보니 그의 출장정지가 풀려 경기에 출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즌초반 죽을 쑤고 있는 삼성 타선을 보며 가뜩이나 그립던 그를 보며 혼자 신이 나서 나바로 응원가를 불렀다. 춥다는 핑계로 홀짝홀짝(x) 벌컥벌컥(o) 들이킨 정종 덕에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마구 소리를 질렀는데, 그런 나를 기범이와 종환이가 술취한 아재라며 놀려댔다(....) 한참을 소리지르고 재밌게 야구 구경을 했는데, 술로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추웠던 데다 경기도 롯데 마린스 쪽으로 한참 기울어지는 분위기라 7회말쯤 구장을 뜨기로 했다. 그리고 그냥 가기 아쉬워 롯데샵에 가서 계획에도 없던 유니폼도 질렀다. 마킹은 애국심을 가득 담아 2군에 내려갔다는 이대은으로...


(제발)


(한국인이면)


(이대은 유니폼 삽시다)


기념사진을 찍고 지바역으로 돌아간 우리. 나는 버스에 타자마자 술기운에 그대로 곯아 떨어져버렸다. 그리고 눈을 떴더니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바깥. 길이 엄청 막혔는지 비행기 출발 시간이 아슬아슬할 지경으로 딱 맞춰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여긴 누구 나는 어디)


(어디긴 어디야 공항이지)


시간이 촉박해서 수속을 늦게한 탓에 자리배정도 다 따로 된 우리. 부랴부랴 면세점을 스쳐 귀국 비행기에 앉았다. 마지막 연대감을 위해 함께 게임을 하며 가기로 했지만, 결국 각자 영화랑 드라마 보느라 그러지도 못했다.


(안녕 갓본. 언젠가 또 올게)


(여행의 마지막 음식은 좀 아스트랄한 리조또(?)였다)


그렇게 두 시간을 날아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김포공항으로 왔다.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였을까 진짜 3.4초 같은 3박 4일을 보낸탓인지 영 어안이 벙벙한 것이 귀국이 실감나지 않았다.


(정 그렇다면 내가 실감 싸다구를 날려줄게)


짐을 찾아 각자의 집으로 향하면서 끝을 마친 여행. 종환이는 또 깨알같이 집으로 향하는 막차를 놓침으로써 그다운 모습을 보였다.


(괜찮아. 어차피 너희는 다음주면 모두다 이곳으로 오게 될테니)


여독이 오래가는만큼 여운이 남는 여행이었다. 기범이와는 두 번째, 종환이와는 처음으로 떠나는 외국 여행이었는데, 희한하게도 별다른 다툼도 서운함도 없이 즐거움과 편안함만으로 가득한 여행다. 한참을 이유없이 가기가 꺼려지던 일본은 셋이 떠난 여행 덕에 또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변했다. 조금 오글거리지만 둘에게 감사의 말을 건네고 싶다. 기회되면 또 한 번 갑시다. 일본이 됐든 어디가 됐든.


(에에자나이까?)


(에에자나이까!)


- 3.4초 일본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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