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잡설2010. 7. 6. 17:50

2010년 사회학과&우리사이 여름농활대
여성 및 체조 주체 배정훈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슬슬 취업을 위한 스펙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기에 돌입하는 내가 열흘에 가까운 여름농활에 참여한다는 것은. 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장고를 거듭한 끝에 농활에 가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그리고 마지막. 결국 나를 농활로 끌어당긴 것은 사람을 항상 설레게 하는 이 두 단어였다.

 

ⓒ 안예하


여름 방학을 1개월여 앞둔, 이제 겨우 토플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있을 시점 즈음에 유정이의 문자를 받은 게 시작이었다. 사회학과와 우리사이가 함께 농활을 준비해 가려한다고,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이 나를 동요하게 했다. 뭐라고 말해야할까. 첫사랑의 기억과도 같은 우리사이의 이름이 나오면 왠지 나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게 된다. 사회학과의 낯선 얼굴들도 기대가 됐다. 거기에 더해 결정적으로 '농활'이다. 내가 우리사이와 사랑에 빠지게 해주었던, 많은 기억과 추억, 사람을 남게 해준 농활이다. 우리사이의 마지막과 사회학과의 처음을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나는 그저 가야겠다 싶었다. 그 후, 흘러가는 시간을 인식하지 못한 채 허우적댄 것이 얼마였을까. 나는 어느 샌가 논산 상월면의 가재울 마을에 두 발을 붙이고 서 있었다.

 

대학 생활을 여러 해 하다 보니 별 필요도 없는 걱정을 사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농활에 있어서도 그랬다. 밥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작업은 재미가 있을까, 평가는 원활하게 진행이 될까. 농활 대원의 반 수 이상이 새내기였고, 두 단체가 오며 함께 진행하는 농활이었기에 이러한 걱정들은 괜히 현실감 있게 다가오곤 했다. 하지만 역시나 기우였다. 나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가재울에서의 농활은 즐겁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갔다. 새내기들은 농활에서 새롭게 닥치는 상황에 겁을 먹기는커녕 어떤 상황에서도 덩실덩실 춤을 추며 어울렸고, 선배들도 단순한 방관자에 그치지 않고 그들 자체로 농활의 기류에 어울려 하나가 됐다. 우리의 몸은 고된 작업과 빡빡한 스케줄로 인해 너덜너덜해져갔지만, 마음만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작업과 함께하는 한줄기 노래, 농활 대원들끼리의 소통,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우리를 힘들게 해도 “바→이↘” 한마디로 그저 웃어넘길 수 있었다.


ⓒ 안예하

꿈같았던 시간들이 지나고 북적거리는 대도시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지금,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서있었던 논틀밭틀은 아련한 추억속의 거짓말만 같다. 내가 느꼈던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을 보며, 영상을 보며 기억을 곱씹고 곱씹지만, 결국 이 기억도 지금의 선명한 빛깔을 조금은 잃어버릴 것이다. 이렇게 나는, 즐겁고 행복했기에 충분히 마지막이 될 자격이 있는 이번 농활을 조금씩 떠나보내고 있다. 하지만 다음 해에, 또 다음 해에도 농활을 가는 이들이 우리와 같이 행복했던 기억의 자국을 매만져볼 수 있었으면 한다. 시간이 지나며 기억에 빛이 바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끔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기억의 손잡이를 되감아 놓자. 후배들에게 농활의 기억을 전하려 할 때 지나치게 느슨해져 있는 기억을 억지로 잡아당기느라 끙끙대지 않도록. 우리의 기억 조각이 그들에게 농활을 전하는 촉매가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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