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잡설'에 해당되는 글 19건
- 2012.01.19 정신이 없어도 너무 없다....... 2
- 2011.12.31 1년 반만에 올리는 포스팅. 2
- 2010.07.06 2010년 농활 후기 1
- 2010.06.03 블로그 방치모드 끝 2
- 2009.10.15 블로그 주소 들어가있는 명함 뿌리기 민망해서라도.......
- 2009.07.17 글을 매우 안 올리고 있음에 대한 변명 2
- 2009.05.25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 2009.05.20 가네시로 가즈키, SPEED 1
- 2009.05.01 블로그 방치 모드에 대한 반성..........
- 2009.04.08 지난 주 시사IN............. 1
아무래도 내년부터는 뭔가 글을 좀 끄적끄적 써야 이래저래 준비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새소식 하나.
2년 반 전, 저를 탈락의 슬픔에 울게했던 시사IN 인턴에 마침내 합격했습니다. 짜잔
감격의 눈물ㅜㅜㅜㅜㅜㅜㅜ 이 흐르는 동시에 대체 날 왜 뽑아주신건지....... 의문이 들며 앞으로의 인턴기자
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앞서네요..... 에고고
거기에 더해...........
사실 불안한 마음에(이번 겨울을 허송세월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중 삼중으로 안전장치를 만들어뒀었는데
그 중의 하나는 계절학기였고(이건 무사히 수강취소 완료. 물론 등록금 중 11만원은 허공으로 날아갔지만ㅜㅜ)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는데......
엄...... 역시 저를 뽑아주신 동아일보에도(?)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하나(?)
대체 근데 난 왜 뽑힌거지?? ........ 면접도 죽 쒔고..... 작문은 안드로메다였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우선 순위인 시사IN 인턴이 됐기에 동아일보 인사관리팀으로 전화를 해 개인적인 사정으로 못갈 것 같다고
말을 했더니 계속 어떤 사정인 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사IN 인턴에 합격해서요" 라고 했더니
"시사IN이요?????" 라며 매우 격한 반응을 보이는 상대방
음....... 이런 좌빨새끼(.........)를 왜 뽑았을까하는 억하심정이었던걸까..?
알고보니 마침 전화한날이 조선일보 인턴 합격자 발표날이었고, 담당자는 당연히 내 입에서 조선일보라는 이름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인 듯.
어허허허......
아무튼간에 1월 2일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는데! 그동안 놀려두었던 블로그를 그를 계기로 활성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으자자잣 화이팅!!
2010년 사회학과&우리사이 여름농활대
여성 및 체조 주체 배정훈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슬슬 취업을 위한 스펙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기에 돌입하는 내가 열흘에 가까운 여름농활에 참여한다는 것은. 하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장고를 거듭한 끝에 농활에 가기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그리고 마지막. 결국 나를 농활로 끌어당긴 것은 사람을 항상 설레게 하는 이 두 단어였다.
ⓒ 안예하
여름 방학을 1개월여 앞둔, 이제 겨우 토플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있을 시점 즈음에 유정이의 문자를 받은 게 시작이었다. 사회학과와 우리사이가 함께 농활을 준비해 가려한다고,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는 말이 나를 동요하게 했다. 뭐라고 말해야할까. 첫사랑의 기억과도 같은 우리사이의 이름이 나오면 왠지 나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게 된다. 사회학과의 낯선 얼굴들도 기대가 됐다. 거기에 더해 결정적으로 '농활'이다. 내가 우리사이와 사랑에 빠지게 해주었던, 많은 기억과 추억, 사람을 남게 해준 농활이다. 우리사이의 마지막과 사회학과의 처음을 함께할 수 있는 곳으로 나는 그저 가야겠다 싶었다. 그 후, 흘러가는 시간을 인식하지 못한 채 허우적댄 것이 얼마였을까. 나는 어느 샌가 논산 상월면의 가재울 마을에 두 발을 붙이고 서 있었다.
대학 생활을 여러 해 하다 보니 별 필요도 없는 걱정을 사서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농활에 있어서도 그랬다. 밥은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 작업은 재미가 있을까, 평가는 원활하게 진행이 될까. 농활 대원의 반 수 이상이 새내기였고, 두 단체가 오며 함께 진행하는 농활이었기에 이러한 걱정들은 괜히 현실감 있게 다가오곤 했다. 하지만 역시나 기우였다. 나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가재울에서의 농활은 즐겁고 올바른 방향을 찾아갔다. 새내기들은 농활에서 새롭게 닥치는 상황에 겁을 먹기는커녕 어떤 상황에서도 덩실덩실 춤을 추며 어울렸고, 선배들도 단순한 방관자에 그치지 않고 그들 자체로 농활의 기류에 어울려 하나가 됐다. 우리의 몸은 고된 작업과 빡빡한 스케줄로 인해 너덜너덜해져갔지만, 마음만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작업과 함께하는 한줄기 노래, 농활 대원들끼리의 소통, 시시때때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가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우리를 힘들게 해도 “바→이↘” 한마디로 그저 웃어넘길 수 있었다.
ⓒ 안예하
꿈같았던 시간들이 지나고 북적거리는 대도시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지금,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서있었던 논틀밭틀은 아련한 추억속의 거짓말만 같다. 내가 느꼈던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사진을 보며, 영상을 보며 기억을 곱씹고 곱씹지만, 결국 이 기억도 지금의 선명한 빛깔을 조금은 잃어버릴 것이다. 이렇게 나는, 즐겁고 행복했기에 충분히 마지막이 될 자격이 있는 이번 농활을 조금씩 떠나보내고 있다. 하지만 다음 해에, 또 다음 해에도 농활을 가는 이들이 우리와 같이 행복했던 기억의 자국을 매만져볼 수 있었으면 한다. 시간이 지나며 기억에 빛이 바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끔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기억의 손잡이를 되감아 놓자. 후배들에게 농활의 기억을 전하려 할 때 지나치게 느슨해져 있는 기억을 억지로 잡아당기느라 끙끙대지 않도록. 우리의 기억 조각이 그들에게 농활을 전하는 촉매가 될 수 있도록.
아무래도 내 심약한 성격 탓이겠지만
그가 처했을 상황을 생각하면
그가 부엉이 바위 위에서 떠올렸을 일들을 생각하면
눈가에 눈물이 핑 돈다.
무엇이
도대체 무엇이 퇴임한지 1년 반이 조금 지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을까.
그가 온전히 잘못만을 범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가 한 모든 일이 올바른 일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표현한
압박감이 그를 짓누른 것은 무엇때문일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그가 재임시절 그토록 열정을 가지고 추진했던
검찰의 탈권력화, 탈권위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조용히 되뇌어본다.
이번 권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오카모토 가나코'의 모습을 나와 겹쳐보게 되는 것은 왜일까. 단지 그와 내가 성별이 다를 뿐 살아온 삶의 궤적이 유사해서일까? (물론 난 그가 그랬던 만큼 사회에 마냥 순응적이기만 했던 일반적 의미의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유사성에 나오는 것이든, 아니면 그저 내가 그렇게 느낌으로써 통쾌함을 맘껏 즐기려 하기 때문이든 크게 상관은 없다. 어쨌든 책을 다 읽고 난 내 가슴 한 구석이 서늘하리만큼 시원해졌으니까.
그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접한 것은 GO. 그다음이 연애소설, 그다음이 레볼루션 No.3 였다. 이제 SPEED 까지 읽어내었으니, 마지막으로 플라이 대디 플라이 정도. 혹자는 가네시로 가즈키의 한국어판이 그의 작품이라기보다는 양억관, 김난주 부부에 의해 재해석된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나로서는, 일어판을 직접 읽어볼 수 없으니 확인할 길은 없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난 가네시로 가즈키의 팬이라기보다는 양억관, 김난주의 팬일 뿐일까? 사실, 어느쪽이든 큰 상관은 없지만. 점점 다가오는 바깥세상으로부터의 압박에서부터 잠시나마 나를 구제해준 가네시로 씨에게, 혹은 김난주 - 양억관 부부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언젠가 또 팍팍한 기분이 들 때, 마지막 남은 카드인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꺼내들며 또다시 감사하게 되었으면 한다. 기분 좋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