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9. 12. 25. 19:19

킬리만자로를 무조건 가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어차피 모시를 가고, 하루만 있다오기는 애매하니 이왕 근처까지 간 거

 

탐방이라도 좀 하고 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던 거다.

 

알프스에서처럼 산 위에서 보는 경치도 즐길 수 있으면 좋을 것도 같았고..

 

더군다나 본격 산행도 아닌 원데이 트래킹이었다.

 

 

 

그러니까 애초의 계획에

내 저질화 된 체력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는 건 숨을 헐떡이면서야 깨달았다..

 

얼른 먹고 킬리만자로 ㄱㄱ

일어나 조식을 먹다보니 우리 가이드 아이작이 와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이작은 주섬주섬 물과 호스텔에서 싸준 런치 박스를 챙겼고, 그대로 우린 킬리만자로로 떠났다.

 

나름 안락했던 도요타 해치백. 대부분 케냐-탄자니아 차들은 일본에서 넘어와서인지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다

지도로 볼 때는 모시가 킬리만자로 산 기슭에 있는 것만 같은데,

 

막상 가보니까 꽤 멀었다. 킬리만자로 초입까지 거의 1시간을 차로 달려가야 했다.

 

웰컴 투 킬리만자로. 입산 서류를 쓰는 아이작과 멍 때리는 윷긩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 최고봉의 위엄에 걸맞게 나름 복잡한 입산 절차를 가지고 있었다.

 

입산료만 1인당 83달러. 만약 산에서 숙박을 한다면 매일 83달러씩이 더 해진다.

 

그리고 외국인이 등산을 하려 할 경우, 반드시 현지인 포터나 가이드가 동행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북한산 마냥(..) 마음대로 올라갈 수는 없다는 거다.

 

우리의 경우 숙박이 없는 원데이 트래킹이어서, 사실상 혼자서 포터이자 가이드 노릇을 하는 아이작과 함께했고,

 

운전을 해주는 운전기사도 따로 있었다.

 

자 갑시다

얼마 만에 해보는 등산이었을까.

 

제대로 해본 건 아마 10년 전 의무소방으로 복무하던 시절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회식으로 간과 몸을 동시에 살찌운 나에게

 

마음과는 달리 트래킹은 꽤 버거웠다.

독특한 분위기의 킬리만자로 산행.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다
곧잘 아이작을 따라 올라가는 윷긩. 하지만 내 상태는...

잠깐의 휴식시간을 포함해 우리가 닿을 포인트까지 가는 시간은 대략 4시간 정도.

 

조금이라도 빨리 가야 킬리만자로 꼭대기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아이작의 말에

 

최대한 덜 쉬고 올라가려고 노력했는데, 거의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쯤.. 나는 햄스트링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아 이 저질 체력.

 

쾌활한 윷모 씨와 초점을 잃은 뿌모 씨. 1차 기착지인 만다라 헛 높이가 거의 백두산 높이였다.

아마 킬리만자로 산을 오르내리면서

 

전체의 여행기간 동안 만난 한국 사람의 대부분을 다 만난 거 같다.

 

"한국에서 오셨어요?"

대부분 수일 일정으로 포터, 가이드들과 함께 킬리만자로 산 정상에 다녀오시는 중년 등산객들이었는데,

 

"한국에서 오셨어요?"라며 반갑게 인사해주셔서 처음엔 신기했는데,

 

나중엔 진짜 이곳이 북한산인가(..) 싶을 정도로 한국 사람이 너무너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나저나 저 분들도 쉬이 다니시는 걸 십수년은 젊은 내가 그렇게 힘들었다니..또르르

 

빨리 와 뿌유. 여유 넘치는 윷긩

내가 참 힘들어보였는지 아이작이 페이스를 조절하며

 

신기한 동물도 구경시켜주는 사이 우리의 목적지 부근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된 거였다.

런치박스를 야무지게 먹어보아요

햄버거와 과자, 쥬스 등으로 구성된 런치박스 구성은 단촐했지만, 제법 맛있었다.

 

격한(?) 운동을 한 뒤라서 그런가..

 

 

 

아쉬웠던 건 우리 나름대로 꽤 높이 올라갔음에도 불구하고, 안개와 구름에 갇혀 주변 풍경(특히 킬리만자로산 정상 등)이랄만한 게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는 것.

 

이것만 봐서는 여기가 킬리만자로인지 뭔지..
이봐 저질 체력 친구. 그냥 즐기라구

아쉬운 경치에 조금 허무하긴 했지만, 그래도 쾌활한 아이작 덕분에 괜찮았던 것 같다.

 

더듬 더듬(=나, 아이작은 영어 잘하니까ㅜㅜ) 영어로 아이작에게 탄자니아 얘기를 물으며

 

또 아이작이 모시에서 만나 결국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호주인 여자친구 이야기도 들으며,

 

킬리만자로 트래킹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물 만난 고기처럼 날아다녔던 윷긩(32세, 수영애호가). 평소 운동이 이렇게 중요하다
아이작과 함께 쓰리샷

내려오는 길에 아이작은 원래 알던 친구(?)로 보이는 인물을 만나 한참 수다를 떨었다.

 

덕분에 나와 윷긩은 좀 더 하산에 집중하며(....)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었던 것도 같다.

 

등산 끄읕

올라가는 데 4시간 내려오는 데 3시간.

 

우리의 킬리만자로 트래킹은 그렇게 끝났다. 킬리만자로 꼭대기를 못본 게 유일한 흠이었지만,

 

아이작은 그곳이 보이는 장소가 있다며, 그쪽으로 우리를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모형산 꼭대기라도 정벅

어른들의 사정상(..) 반드시 일정에 포함되어야 하는 듯한 기념품샵 투어를 먼저 들렀는데,

 

혹시나 살 게 있어 둘러봤지만 별다르게 건질 건 없었다.

 

괜히 거기서 화장실 찾다가 알 수 없는 오물통(..)에 발이 빠지고 팔꿈치가 까지는 참사만 났다...

 

 

 

킬리만자로를 오가는 길에 아이작과 운전 기사 형님이 계속 레게 음악을 틀어두었었는데,

 

레게가 탄자니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르냐 물어보니 맞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하(..)와 스컬의 음악을 틀며 이게 코리안 레게다 했더니

 

묘하게 웃으며 그게 레게가 맞냐고 비웃음을 샀다(....)

 

바오밥나무는 참 큽니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아이작이 알고 있다는 포인트에서도 킬리만자로산 꼭대기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엄청나게 큰 바오밥 나무를 바로 옆에서 본 것만으로도 꽤 신기한 경험이었다.

 

킬리만자로산 꼭대기는, 나중에 생각지도 않은 방법으로 보기도 했고(..)

 

 

 

쾌활한 아이작은 곧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되면 모시를 떠나며 가이드를 그만 둘 예정이라고 말했지만,

 

혹시나 급하게 킬리만자로 가이드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아이작에게 연락하세요

아이작에게 연락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해질녘 한산한 모습의 모시 거리

다시 돌아온 모시에서 이제 뭘 좀 먹어야 했는데,

 

뿌윷 부부 모두 어딜 움직여서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알고보니 나만큼(..) 윷긩의 체력도 거의 방전상태였던 것.

 

 

 

폭포를 구경하고 왔다는 완과 Um은 그곳에서 만난 다른 외국인 친구와 함께

 

외식을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지만,

 

우리 둘은 결국 정중히 거절하고 호스텔 안에서 저녁을 해결하기로 했다.

 

전에 맡겨두었던 빨래를 찾고, 내일 새벽 타야할 택시를 잡아야 하기도 했었다.

아이고 죽겠다

원래 계획은 첫날 검증했던 호스텔 식사를 다시 먹는 거였는데,

 

이게 또 그날 따라 식당이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결국 호텔 직원에게 끓는 물과 햇반 데우기를 부탁한 다음, 라면에 참치까지 얹어 후루룩후루룩 맛있게 먹었다.

 

어쩔 수 없는 한식(?)이긴 했지만, 또 오랜만에 맵싹한 음식을 먹으니 피로가 좀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호텔 직원의 도움으로 시크한 영국인 여행객과 함께 타는 것으로 택시를 예약하고,

 

아쉬운 밤을 저녁 먹고 돌아온 완, Um과 함께 가벼운 수다로 시간을 떼우다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었다.

 

잔지바르로 넘어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새벽 4시 반에는 출발해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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