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4.01.25 <가부장제 2.0>이 대안이 될 수 없는 이유

가족의 위기, 특히 한국 사회 특유의 가부장제를 골자로 하는 가족 제도에 위기가 도래한 것은 분명하다. 이혼율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결혼을 의무가 아닌 선택으로 여기는 청년들은 점차 늘어만 간다. 여러 가지 이유로 출산을 거부하는 부부들이 생겨나는 것은 물론, 전통적 의미에서의 가족에 속하지 않는 1인 및 2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길게 보면 수백 년, 짧게 보면 수십 년을 연명해온 현재의 가족 제도가 변화를 위한 용틀임을 시작해야할 때가 찾아온 것이다.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원인을 분석해야 할 것이다. 공고한 성과 같았던 가부장제 가족은 왜 붕괴하기 시작했는가. 첫 번째로 자유로운 개인의 등장 때문이다. 가부장제에서는 가족의 구성원 개개인 중 남성 가부장에게 힘이 집중되고, 그를 제외한 다른 구성원들은 일정 이상의 자유를 포기해야한다. 가족의, 가문의 안녕과 유지를 위해서는 심지어 위대한 가부장마저도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이를 탐탁하게 여길 리 없다. 이에 더해 가부장제의 목표는 성씨의 대물림과 그를 통한 가문의 존속이다. 근대교육으로 등장한 자유로운 개인들이 더 이상 가문의 존속에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으며, 이에 기반을 둔 설득에 포섭되지 않는다.

 

가부장제 붕괴의 두 번째 이유는, 가부장제가 필연적으로 소수를 주변적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가부장제는 조부모-부모-자녀(특히 아들)로 이어지는 단단한 줄기를 기초로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이 사회에는 그 줄기의 주변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들이 존재한다. 게이-레즈비언 커플, 천애고아, DINK족 등이 바로 그들이다. 가부장제는 스스로를 정상의 범주에 두기 위해 필연적으로 이들을 주변부로 밀어내고 이들을 비정상적 존재, , ‘타자로 만든다. 가부장제 가족이 유일한 정상적 형태로 자리매김해야만 재생산과 성씨의 대물림을 통해 안정적 가문의 존속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다원주의화 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이 매커니즘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





결국 작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대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 바로 <가부장제 2.0>이라는 아이디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가족이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준거집단으로써의 전통적 가족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이 이 주장의 핵심 골자다. 이른바 전통적 가부장제와는 달리 가부장의 포용성을 더 높이되, 각각의 개인이 사회에 노출될 때 오는 불안정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가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수백 년을 내려온 제사라는 전통 의식이 되고, 가족 구성원은 가족과 가문의 존속이라는 한 가지 방향성을 위해 그 스스로의 책무를 다 해야 한다.

 

수백 년을 내려온 체계의 장점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계승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가부장제 2.0>의 가치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우리는 <가부장제 2.0> 역시 기존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만 한다. 기존 가부장제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부장제 2.0>에서도 최고의 가치는 가족, 더 나아가 가문의 존속이다. 현대의 자유로운 개인들이 과연 이 봉건적 가치에 얼마나 찬동할 것인가. 애초에 각 사회의 구성원들이 가문의 존속을 위해 자유를 희생할 준비가 돼 있었다면, 기존의 가부장제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이전과 다른 포용적 가부장상()이 일부를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체제의 한계는 분명하다.

 

<가부장제 2.0>이 대안이 될 수 없는 두 번째 이유 역시 기존 가부장제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 , 주변부의 타자화를 여전히 막을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가족과 가문의 존속을 위해서는 가족 내에서 재생산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기존 가부장제에서와 마찬가지로 <가부장제 2.0>이라는 체제 내에서도 이는 반드시 행해져야할 기본적 목표다. 따라서, 이 목표를 수행할 수 없는 집단은 자연스럽게 비정상적 가족으로 불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가부장제 2.0>이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되지 않고, 여러 지향점 중 하나의 선택 사항이 되면 타자화 문제가 일어나지 않느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가부장제 2.0>이 일개 선택 사항으로 전락하면 그것만이 갖고 있어야 할 단 하나의 정상성이 상실되고, 자연스레 각 구성원들이 느낄 정상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안온함이 통째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2.0>이라는 아이디어를 비난만 할 수 없는 것은, 모든 것이 붕괴되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개인들을 구제하기 위한 따뜻한 마음에서 고안된 틀이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는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덮을 뿐이다. 옳지 않다. 사실 이미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들은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도전하고 이를 깨부수며 보다 올바른 대안을 찾아 헤매고 있다. 대다수가 전통적 가족제도에 기반 한 교육과정과 TV 프로그램 등으로 인해 잘못된 사회화 과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불합리한 계약을 참지 못해 파업하는 노동자를 무책임하다 비난할 수 없듯, 우리는 불합리한 결혼 제도를 깨려하는 구성원들을 무책임하다 비난할 수 없다. 비난의 화살은 이미 존속할 수 없음이 판명된 가족 및 결혼제도를 끊임없이 국민들에게 사회화하려드는 국가에게 돌려져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사회 구성의 기본 단위가 무너지며, 모든 것이 무너질 듯한 공포에 휩싸인 지금도 큰 흐름에서 보면 진정한 대안을 찾기 위한 과정일 수 있다. 따라서 허점투성이의 섣부른 대안을 내어놓기보다는, 좀 더 큰 틀에서 사회 전체가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조용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물론, 모두가 그저 손을 놓고 있자는 얘기는 아니다. 특히 국가의 보조적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다. 국가는 전통적 가족이 수행했던 역할을 임시적으로 떠맡음으로써 구성원들의 고통 분담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가부장제에 기초한 가족제도를 정상가족인 것 마냥 홍보하려는 태도를 지양해야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붕괴하는 현 가족제도를 대체할 대안(대안은 단 하나일 수 없다)’은 반드시 자연스레 우리 앞에 등장할 것이다.


Posted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