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7. 1. 29. 21:10

마침내 여행을 떠나기 전날. 하지만, 자고 일어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가 타야하는 비행기는 오전 7시 출발. 그말인 즉슨 넉넉하게 5시쯤엔 인천공항에 가 있어야 한다는 거고, 그러려면 3시 반쯤 출발하는 서울역발 인천공항행 버스를 타야한다는 거고, 그러려면 2시에는 일어나야 한다는 거고.... 뭐? 2시?


(이게 모닝콜이면 브런치가 디너여)


하지만, 퇴근하고 급하게 짐을 싸봤더니 이미 밤 11시. 유달리 그주 일정이 빡셌던지라 이미 잠이 부족한 상태였는데 이 여행 괜찮을까?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리고 이 우려는 후에 현실이 됐다.


어쨌든 잠 안 자고 일어나는 것만은 자신 있는 의무소방 출신 겸 하리꼬미 완주자로서 무사히 일어나 눈밭을 헤치고 서울역을 거쳐 마침내 인천공항을 도착한 시각은 새벽 4시 반. 꾸럭 여사 역시 졸린 듯한 표정으로 잠시 뒤 도착했다.


(새벽 4시 인천공항에서 보는 달은 참 이쁘단다)


(눈꺼풀이 계속 내려온다...........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은 베트남 하이퐁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5시간 동안 꿀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는데. 이 희망은 곧 무참히 깨졌다.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뒷자리에서 뭔가 꿈틀꿈틀대는 그림자. 4살짜리 왕성한 체력의 꼬맹이가 내 등받이 뒤에서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아 이번 여행은 잠과 인연이 없는 여행이 되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역시 그러했다. 비행기가 이륙해서 몇 시간여 동안 쉬지 않고 내 등받이를 고양이 꾹꾹이마냥 눌러대는 4세 소년. 이따금씩은 비행기 좌석에 달려있는 배식판(?)을 쿵쿵 내려찍어 나를 소스라치게 했다. 이건 뭐 꼬맹이한테 뭐라 할 수도 없고.. 뭐라 한다고 해도 듣지도 않고... 결국 녀석의 왕성함에 다크서클이 점점 흘러내리던 뿌&꾸는 최악에 가까웠던 비엣젯 기내식을 제대로 혹평할 기력도 없이 그가 지쳐 잠들자마자 그를 눈치채지도 못한 채 함께 잠들어버렸다.


(피땀눈무울 내 새까만 서크을)


반 쯤 넋이 나간 상태에서 도착한 하이퐁 공항. 우리의 숙면을 방해한 꼬마 악마(?)에게 눈을 한 번 흘겨주고, 마침내 베트남에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기분 탓인가, 왠지 공항이 너무 허한데?


(뭔가 있을 게 없는 듯한 기분이야)


애시당초의 계획은 이러했다. 우리가 하이퐁에 체류하는 시간은 7~8시간 남짓. 그 시간에 하이퐁 시내로 나가 맛있는 밥을 먹고 커피 한 잔 하고 구경할 거리를 좀 보다가 오는 것. 하지만 역시나 문제는 각각 10kg가 넘어가는 각자의 캐리어였다. 그래서 캐리어를 맡기고, 현지 심카드를 사서 장착한 다음 한국에서 바꿔온 미국 달러(USD, 이하 달러)를 베트남 돈(VND, 이하 동)으로 환전해 택시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 하이퐁 캇바이 공항에는 환전소도 코인락커도 심카드를 판매하는 통신사 부스도 없었다. 심지어 공항 직원에게 이를 물어보려 해도 영어조차 잘 통하지 않았다. 겨우 알아낸 것은 ATM이 공항 밖에 있다는 것 정도.


(있으면 뭣하나 쓰지를 못 허는데)


하지만 무슨 문제에서였는지 ATM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심카드를 못 사 인터넷도 안 되는 와중에 이것저것 씨름하다 공항 왼쪽편에 있는 잡화점에서 100달러를 200만 동으로 바꾼 다음 캐리어를 질질 끌고 하이퐁 시내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참고로 2017년 1월 21일 기준 100달러는 220만 동 정도와 바꿀 수 있었고, 우리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독점기업(....)에서 그리밖에는 못바꿔주겠다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베트남 택시 기사에게 DOWNTOWN이라는 말을 설명하는 데 계속 실패하는 와중에 써먹었던 사진 한 장.


(귀인의_도움.jpg)


인천공항에서 대기하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베트남 분을 한 명 만났었다. 그 분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됐는데. 1. 베트남은 지금 설날 연휴 기간이라는 것 2. 하이퐁에는 그다지 볼 것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하이퐁 맛집을 하나 추천 받았는데, 하이퐁 공항에 가서 심카드를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대충 이름만 알아두려는 나에게 한사코 사진을 찍어두라고 했던 귀인. 결국 이 사진을 택시기사에게 보여주고서야 택시를 탈 수 있었으니 그 귀인이 아니었으면 우리는 어쨌을 뻔 했나! 감사합니다 귀인님 ㅜㅜ


결국 마침내 도착한 하이퐁 시내. 택시비로 15만 동이라는 바가지(하이퐁 캇바이 공항에서 시내까지 택시비는 정상적이라면 10만 동이 넘을 수가 없다. 이후 몇 번의 왕복에서 우리가 낸 최고 비용은 10만 5천 동 정도. 절대 처음 택시를 탈 때 얼마를 내야하냐 묻지 말고 나중에 미터기 나온 것 보고 내시길)를 쓴 줄도 모르고 즐겁게 도착한 우리의 첫 목적지는 Bánh Đa Cua Bể Bà Cụ(반 다 꾸어 베 바 꾸)라는 이름의 게국수 전문점이었다.


음식점에서도 역시나 말은 전혀 통하지 않았고, 다행히 옆자리에 앉은 베트남 귀인 시즌 2를 통해 겨우겨우 게국수를 주문한 우리. 그리고 너무나 지친 나머지 별 기대 없이 먹었던 게국수는..........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진심으로 핵꿀맛이었다!!!! 오오오 이것이 베트남의 국수구나 싶을 정도. 국수 두 그릇에 앞에 놓인 꿀맛 빵까지 필요이상으로 집어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낸 돈은 9천 원 정도(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것도 베트남 물가 치고는 비싼 것이었다.) 순식간에 게국수를 클리어 했지만 이곳의 명물 게튀김을 몰라 먹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 이것이 다 인터넷이 안 돼서였다ㅜㅜ 눙무리.... 엇. 그러고보니 지금와서 드는 생각인데 저 가게에서는 와이파이 되지 않았을까..?!


+ 정말 맛있었지만 베트남의 모든 음식이 그러하듯 게국수에도 고수가 들어간다. 이를 원치 않은 사람이 있다면 아래의 짤방을 꼭 보여주시라


(카피라잇 불명. 여행 동안 정말 잘 썼는데 혹시 누가 만든지 알려주시면 추가하겠습니다ㅜ)


아무튼 후다닥 국수를 먹고 당장 필요한 심카드를 위해 길을 떠났는데 쉽게 발견되지 않는 심카드 취급점. 가뜩이나 탁한 오토바이 매연과 횡단보도도 없이 어찌 건널 줄 모르는 길 덕에 멘붕에 빠져 있던 우리는 더더욱 멘붕의 심연으로 빠져들었다.


(심카드 파는 곳은 없고 온통 오토바이 뿐이유ㅠㅠㅠ)


결국 급한대로 겨우 판매점을 찾은 뿌&꾸. 원래 잘 터진다고 해서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vinaphone 대신 급한대로 mobifone이라는 브랜드의 심카드를 둘이 합쳐 20만 동에 샀다. 20동이 1원이니 1인당 5000원에 산 셈!이지만.....


(애증의 모비폰)


요놈의 녀석은 결국 우리에게 큰 짐이 되고 말았으니.. 그것은 투 비 컨티뉴드.. 아무튼 심카드 까지 해결한 우리는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베트남의 명물 커피집으로 향했다. 그것은 바로...


(이곳이 바로!)


(하이랜드 커피!)


베트남의 명물 하이랜드 커피(Highlands Coffee)! 카페에 도착해서 겨우 한숨을 돌리고, 맛 좋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의 여유도 즐긴 우리. 감사하게도 하이랜드 커피 종업원이 우리 짐을 잠깐 맡아주기로까지해서 남은 하이퐁 여정을 편안히 즐길 수 있게 됐다.


잠시의 여유를 즐긴 이후 근처 금은방에서 환전까지 완료한 뿌&꾸. 베트남은 은행 뿐 아니라 금은방에서도 환전을 잘 해주더라. 우리의 경우 주말 도착이라 은행에서 환전을 할 수 없었기에 유일한 선택지였다. 그런데도 거의 쌩 날강도에 가까웠던 하이퐁 공항 잡화점과 달리 100달러->226만 동으로 환전할 수 있었다. 총 환전한 돈은 앞서 환전한 돈을 합쳐 400달러 정도. 여행 끝까지 모자라지 않게 썼다.(다만 1달러 권의 경우 2만 동으로 교환. 고액권이 귀해서 환전이 더 잘 된다고 한다)


겨우겨우 여행의 필수요소(?)를 모두 갖춘 우리. 그런데 계속해서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출국하기 전 미처 자르지 못하고 온 머리였다. 아까 심카드를 사러 헤매다 슬쩍 봐두었던 거리의 미용실에 가려는 나를 꾸럭 여사가 다소 말렸지만, 모험심으로 가득한 나는 비엣남 헤어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왠지 토니 앤 가이에 좀 끌렸던 것 같다. 대통령님 헤어스타일 생각도 나고 먼산)


(이 너저분한 머리 좀 잘 잘라주세요 형님)


베트남의 미용기술은 놀라웠다. 일단 샴푸부터 매우 정성스러웠달까... 내가 머리를 자르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손님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것이, 알고보니 이 근처의 유명한 가게였나보다. 머리를 자르는 동안 꾸벅꾸벅 졸며 부족한 잠도 좀 보충하니..드라이기로 정성껏 고데기까지 해주신 형님 덕분에 헤어스타일 완벽 재탄생!


(그리고 배쉬퍼피는 전설이 되었다)


머리도 잘랐겠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뿌&꾸. 다음 행선지는 꾸럭 여사가 사랑해 마지 않는 마트! COOP이었다.


(저는 마트를 사랑합니다. 먹을 게 많기 때문이죠)


(먹을 것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다음으로 도착한 곳은 하이퐁의 중심지 공원. 미친듯이 많은 오토바이 덕에 목에 연기가 끼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긴 했지만, 선선한 날씨에 뛰노는 아이들을 구경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특히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어졌을 오페라 극장은 인상적인 호치민 초상화를 제외하고도 참 볼만했다.


(꽃밭과의 어색한 콜라보)


(그리고 오페라 극장)


또 공원에서 왜인지 이승기를 닮은 베트남 청년을 만나 한국어로 한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20살 대학생이라는 그는 나중에 한국으로 유학을 오고 싶다고 했다. 영어는 정말이지 지독하게도 통하지 않았던 베트남인데.. 한류가 참 대단하긴 대단하다 싶었다.


한참 공원을 산책하다보니 금방 배가 고파졌다는 꾸럭 여사. ("밥 먹은지 3~4시간 밖에 안 됐는데?" "^^....배고파") 결국 우리는 다시 맛집 검색에 열을 올렸고, 정말 몇 안 되는 하이퐁 관련 블로그글을 열심히 찾은 결과 공원에서 머지 않은 맛집을 찾을 수 있었다.


(나름 고급 음식점이라능)


그렇게 입장한 음식점은 Quán Ăn Ngon 3 Miền(꽌 안 응온 바 미옌). 굉장히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음식점이었는데 무작정 시킨 반쎄오, 분짜 등 세트와 볶음밥도 굉장히 맛있었고, 양이 너무 많아 다 먹지 못할 정도였다........


(음식도 맛있고)


(맥주도 맛있고)


맥주를 포함해서 우리가 낸 돈은 1만 원 언저리. 고 고급 음식점 맞냐능....


+ 비엣젯에서 인천<->하이퐁행 티켓이 저렴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하이퐁을 들르는 선택을 하는 분들이 꽤 있을 거 같은데, 앞서 게국수집 반 다이 꾸어 바꾸와 꽌 안 응온 바 미옌은 꼭 한 번 가볼만 한 듯.

반 다 꾸어 베 바꾸는 여기




꽌 안 응온 바 미옌은 여기에 있다.



배가 부를 대로 부른 뿌&꾸는 감사하게도 짐을 맡겨둔 하이랜드 커피로 다시 출발. 너무 많이 걸어 다리가 아픈 꾸럭 여사를 설득해 부른 배를 꺼트리려 걸어가기로 했다. 덕분에 지나가는 길에 놀이공원(?)도 구경할 수 있었다.


(여기를 못 가본 게 아쉽. 놀이공원 마니아 길 모 씨랑 가야하나?)


금방 도착한 하이랜드 커피에서 짐을 찾고 다시 하이퐁 공항으로 출발! 아무 택시나 잡아타고 하이퐁 공항에 도착했는데, 공항으로 들어가는 입장료(?) 1만 동까지 포함해 9만 동이 나온 택시 요금을 보고 우리는 그제서야 처음 택시를 탔을 때 2배의 바가지를 썼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침울. 사실 그래봐야 한국 돈으로 따지면 몇 천 원 정도인데, 베트남 동 단위가 크다보니 작게 바가지를 써도 크게 느껴진다.


원래 8시 40분 출발 비행기라 두 시간은 일찍 도착한 하이퐁 공항. 그런데 이놈의 보딩 시간은 왜 이렇게 기약이 없지...?


(비행기가 안 와요)


결국 거의 10시가 다 돼서야 호치민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Jetstar 타시는 분들은 꼭 조심하세요...


(우리는 뭐다? 만신창이다)


간신히 호치민에 도착해 하이퐁과는 또다른 무더위를 후끈 느끼며 정신 없이 호텔을 찾아 간 우리. 호텔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내일 아침 바로 무이네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했기에 최소 새벽 5시반 (....)에는 도착해야 했기에 대충 씻자마자 너나할 것 없이 뻗어버렸다.


(도착)


(그리고 꾸절)


누가 일정을 대체 이렇게 짠 거지?! ......음 그래 나네. 내가 문제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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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7. 1. 29. 17:52

여행을 가기는 가야겠고. 어디로 갈지를 한참 고민하던 뿌&꾸 커플. 주말을 붙여봐야 겨우 4박 5일이 나오는 상황에서 멀리 여행을 가기는 어렵고. 결국 아시아권 내에서 쇼부를 봐야하는데... 먼저 일본은 지진이 두려운 꾸럭 여사에게 KILL. 중국도 중국 유학파 꾸럭 여사의 한 마디("다시 중국을 돈 내고 가는 일은 없을 거야")에 KILL. 결국 남은 것은 동남아 정도인데.. 이곳저곳을 알아보다 떠오른 여행지는 바로 베트남이었다.


(ⓒ VietJet Air)


문제는 베트남에 가서 무엇을 할지 도통 정할 수가 없었다는 것. 베트남이 남북으로 기다란 나라이다보니 북쪽(하노이)로 가든 남쪽(호치민)으로 가든 하나를 정해야 했는데, 하노이의 호안끼엠 호수에도, 하이퐁 인근 하롱베이의 기암괴석에도, 호치민의 데탐거리에도 그닥 관심이 안 간다는 게 문제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선택한 것은 하이퐁. 왜냐하면........ 그냥 제일 쌌으니까(..........)




(호치민이나 하노이 가는 가격의 반 값이었다)


행선지는 결정하였으되 도저히 무엇을 할 지 알 수 없었던 우리. 결국 베트남 및 동남아 전문가 우 모 씨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저기.. 베트남은 어디로 가야 좋을까요?


(무이네! 무이네로 가랏!!)


그리고 그의 강력한 추천에 마침내 무이네를 포함한 베트남 남부를 여행하기로 결정했..는데. 우리가 들어가는 건 베트남 북부 하이퐁인데 어쩌지?.

(어쩌긴 매우 뺑이를 치는 거지)


그렇게 별 선택의 여지 없이 하이퐁->호치민->무이네->나짱->하이퐁을 4박 6일만에 오가는 여행(이라 쓰고 극기훈련이라 읽는) 계획이 세워졌다. 이제 남은 건 세부적인 일정을 짜서 출발하는 것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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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6. 5. 11. 22:00

드디어 마지막날 아침이 밝았다. 원래는 8시쯤 일어날 계획이었지만 몸이 천근만근인 관계로 다소 늦어진 기상 시간. 그동안 우리를 집처럼 품어준 신주쿠 숙소를 아쉬운 마음으로 떠나며, 놀며 보내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안녕 신주쿠. 언젠간 또 만납시다)


이날 우리의 계획은 종환이가 꼭 가보고 싶다는 츠키지 시장을 거쳐 지바 마린스 필드로 가 둘째날 "후지큐 하이랜드의 난"으로 밀린 야구장 관람을 마치는 것. 체크아웃을 하고 가는 것이었기에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짐을 둘 곳이 굉장히 중요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 이 시간에 왜이렇게들 많으신거죠?)


겨우 도착한 시장에는 사람이 넘나 많은 것이었고, 츠키지시장 주변의 지하철 역에는 코인락커가 없었다(....) 그나마 짐 둘 모두가 배낭이었던 난 좀 나았지만, 저 사람떼들 사이에 트렁크를 끌고 다녀야 했던 종환이와 기범이는..


(ZONA 힘들었다고 합니다)


매우(!) 힘들었다. 결국 시장 안쪽으로 들어갈 생각도 못한 채 헤매다 그나마 입구쪽에서 가장 가까운 스시잔마이 본점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유명 프랜차이즈의 본점이라 그런지 그 북적거리는 시장 한 가운데에서 줄을 30분쯤 서서 기다려야 했다.


(뭐.. 우리 줄서는 거야 어제부로 마스터 했으니까. 어라. 그런데 어디선가 본 익숙한 얼굴이..)


(이경재 원장님 일본 진출하셨나효?)


어느덧 30여분 여를 기다려 스시집 입성. 갓본의 스시는 어떨까 궁금증을 가득 품고 두근두근 스시를 기다렸다. 그리고 일본에 가서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는 그 스시님을 영접!


(스시님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와구와구 흡입. 맛있었다. 그런데 말로 전해들었던 것처럼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든지 하지는 않았다. 일본통 종환이 말에 의하면 최고급 스시는 아닌 것 같다고. 우리나라 초밥보다 좀 더 눅눅한 느낌이었는데, 원래 일본 스시가 이런 건가? 어쨌든 즐겁게, 또 맛있게 먹었다. 다음에 일본에 올 때는 더 맛있는 걸 먹을 수도 있을까? 어쨌든 무사히 식사를 마시고 급하게 츠키지시장 기행을 마무리한 우리는 입에 모찌 하나씩 물고 지바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300엔짜리 탐스러운 모찌님)


지바는 도쿄에서 조금 떨어진 도시. 애초에 삿포로행이 무산됐을 때부터 계획했던 지바행이었는데 아침부터 캐리어를 질질 끌고 다니느라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설레는 마음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반쯤 졸며, 반쯤 관성적으로 JR을 타고 1시간쯤. 우리는 지바에 도착해 내렸다.


(지바 역전. 묘하게 도쿄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어서와 지바는 처음이지?)


야구장이 가까워서 그런지, 역앞부터 장식돼 있는 야구 관련 조형물. 일본 답게 매우 모에모에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조형물 세울 돈으로 코인락커 몇 개 더 만들어줄 수는 없는 거였을까(....) 지바까지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온 우리는 어차피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야구장을 들렀다 다시 지바역으로 돌아와야 했기에 원래 이곳에 짐을 맡겨두고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역 구석에 있는 코인락커가 정말이지 죄다 차 있는 것 아닌가. 대략 난감.... 야구 경기 시작 시간은 다가오고... 락커를 더 찾아볼 기력도 시간도 없었던 우리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그냥 짐을 들고 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러고보면 '당연히 되리라 생각했던 것이 안 되는' 상황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롯데 롯데 롯데 롯데♬)


 (QVC 지바 마린스 필드에 어서오셔유)


시간이 임박해 도착했기에 부랴부랴 티켓을 끊으러 갔다. 일본 여행 내내 우리들 내에서 일본어를 담당했던 우종환 선생의 위엄으로 티켓을 구해 입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애초에 티켓을 다시 끊고 야구 관람일을 바꿀 수 있었던 것자체가 종환이의 공로였다) 입장하며 당연하게도 코인락커부터 찾은 우리.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스탭에 이끌려 코인락커 앞으로 갔는데... 역시나 이용할 수 있는 락커는 별로 없고, 그나마 있는 락커는 너무 작아서 우리 짐이 들어가지 않는 상황(....) 진짜 욕설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별 수 없이 짐을 질질 끌고 우리 좌석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갔는데, 거기서 만난 스탭이 야구장측에서 아예 짐을 맡아준다는 것을 알려줘서 겨우 무겁디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짐 질질 끌고 다니는 사진이 단 한 장이 없다는 것이 그 당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드디어 드디어 야구장 입ㅋ성ㅋ


(어라 야구장이 왜 이렇게 희한하게 생겼지? 궁금증은 바로 풀렸다)


사실 짐을 맡기고 바로 오오타니의 유니폼을 사서 입고 응원을 할 생각이었는데, 유니폼이 카드 결제가 안 된단다. 닛폰햄 유니폼이 엄청 유니크하고 예뻐서 꼭 사고 싶었는데ㅜㅜ 아쉬운 마음을 접어두고 좌석에 들어가기 위해 먹거리를 좀 사려고 했는데 어라. 이것도 카드가 안 된단다. 환전해온 돈은 돌아갈 차비를 제외하면 다 떨어져 없는 상태였고, 영어가 잘 안통해 확실하지는 않지만 주변에 ATM도 없다는 것 같은데.... 그럼 우리는 야구 보는 3~4시간 동안 공복 상태로 있어야 하나?.. 점심도 안 먹었는데?!


게다가 흐린 날씨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야구장에서 느껴지는 한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바로 외야 너머에 있는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해풍 때문었는데, 알고보니 마린스 필드는 해풍을 막기 위해 좋은 풍광을 포기하고 저렇게 세미돔 느낌으로 지어진 것이었다.


배는 고프고, 먹을 것이라고는 얼떨결에 무사히 가지고 들어온 정종 한 팩과 맥주 한 캔 밖에 없는 상황. 일단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일어나왔다. 그리고 영어 안 통하는 구장 직원을 붙잡고 한참 설명을 했는데..


"크레디토 카도. 오케이 샵. 아리마셍?????"


되지도 않는 일어로 한참을 씨름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영어를 그나마 좀 할 수 있는 직원이 나타났고, 그 직원에게 대충 상황을 설명하자 중국 음식도 괜찮느냔다. 지금 일본에서 중국 음식 먹겠냐고 투정부릴 땐가. 무조건 오케이를 외치니 따라오래서 따라갔는데... 그곳에서 믿지도 않은 신을 찬양할 뻔 했다.


(할렐루야!!!!! 크레디토 카도 오케데스입니다)


플러스 알파로 베이지색 모자를 쓴 점원은 영어도 그럭저럭 통하였다. 감탄하여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치킨 가라아게와 술을 시키려는데, 어라 따뜻한 정종도 있다고?!


(호뜨 사케 반자이!)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이것저것 사서 좌석으로 갔다. 종환이와 기범이는 내가 한참 안오길래 이 인간이 야구장 밖에 나간 줄 알았다고... 어쨌든 셋 다 감격스러운 마음은 매한가지였고,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한 번 더 사와서 또 와구와구 먹었다.


먹을 게 좀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져 즐겁게 야구 관람. 사실 오오타니는 우리가 간 다음날에 선발 예정이라 타석에서조차 볼 수 없었지만, 의외의 반가운 인물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바로...


(힛또 나바로~)


삼성에서 개그와 수비, 홈런을 담당했던 야마이코 나바로. 그러고보니 그의 출장정지가 풀려 경기에 출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즌초반 죽을 쑤고 있는 삼성 타선을 보며 가뜩이나 그립던 그를 보며 혼자 신이 나서 나바로 응원가를 불렀다. 춥다는 핑계로 홀짝홀짝(x) 벌컥벌컥(o) 들이킨 정종 덕에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마구 소리를 질렀는데, 그런 나를 기범이와 종환이가 술취한 아재라며 놀려댔다(....) 한참을 소리지르고 재밌게 야구 구경을 했는데, 술로 어쩔 수 없을 정도로 날씨가 추웠던 데다 경기도 롯데 마린스 쪽으로 한참 기울어지는 분위기라 7회말쯤 구장을 뜨기로 했다. 그리고 그냥 가기 아쉬워 롯데샵에 가서 계획에도 없던 유니폼도 질렀다. 마킹은 애국심을 가득 담아 2군에 내려갔다는 이대은으로...


(제발)


(한국인이면)


(이대은 유니폼 삽시다)


기념사진을 찍고 지바역으로 돌아간 우리. 나는 버스에 타자마자 술기운에 그대로 곯아 떨어져버렸다. 그리고 눈을 떴더니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바깥. 길이 엄청 막혔는지 비행기 출발 시간이 아슬아슬할 지경으로 딱 맞춰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다.


(여긴 누구 나는 어디)


(어디긴 어디야 공항이지)


시간이 촉박해서 수속을 늦게한 탓에 자리배정도 다 따로 된 우리. 부랴부랴 면세점을 스쳐 귀국 비행기에 앉았다. 마지막 연대감을 위해 함께 게임을 하며 가기로 했지만, 결국 각자 영화랑 드라마 보느라 그러지도 못했다.


(안녕 갓본. 언젠가 또 올게)


(여행의 마지막 음식은 좀 아스트랄한 리조또(?)였다)


그렇게 두 시간을 날아 우리는 다시 한국으로, 김포공항으로 왔다.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였을까 진짜 3.4초 같은 3박 4일을 보낸탓인지 영 어안이 벙벙한 것이 귀국이 실감나지 않았다.


(정 그렇다면 내가 실감 싸다구를 날려줄게)


짐을 찾아 각자의 집으로 향하면서 끝을 마친 여행. 종환이는 또 깨알같이 집으로 향하는 막차를 놓침으로써 그다운 모습을 보였다.


(괜찮아. 어차피 너희는 다음주면 모두다 이곳으로 오게 될테니)


여독이 오래가는만큼 여운이 남는 여행이었다. 기범이와는 두 번째, 종환이와는 처음으로 떠나는 외국 여행이었는데, 희한하게도 별다른 다툼도 서운함도 없이 즐거움과 편안함만으로 가득한 여행다. 한참을 이유없이 가기가 꺼려지던 일본은 셋이 떠난 여행 덕에 또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변했다. 조금 오글거리지만 둘에게 감사의 말을 건네고 싶다. 기회되면 또 한 번 갑시다. 일본이 됐든 어디가 됐든.


(에에자나이까?)


(에에자나이까!)


- 3.4초 일본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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