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이 4월 1일 자로 열흘째를 맞았던 총파업을 종료했다. 그와 함께 8개월여를 계속해온 '대(對) 구본홍 투쟁'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 YTN 노사는 합의사항을 통해 양측의 모든 고소, 고발 따위를 취하하기로 합의하였으며,
공정방송의 제도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노종면 위원장을 비롯한 6명의 해고 문제는 법원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였다.
........ 이렇게, 그들의 길고 길었던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은 마지막 매듭을 지어가고 있다.



(노종면 위원장. Copyright by YTN 노조)

대(對) 낙하산 투쟁

작년 초부터 YTN 신임 사장에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 구본홍씨가 유력하다는 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24시간동안
뉴스를 방송하는 방송사의 사장에 정치적으로나 권력적으로 현재의 기득권자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
사장으로 내정되었다는 사실은 현 정권의 언론 장악 야욕을 극명히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명했지만, 결국 그 우려는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지난해 7월 이른바 '날치기 총회'를 통해 구본홍씨는 YTN의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YTN 노조의 힘겨운 싸움이 시작됐다.

구본홍 사장의 출근저지투쟁, 까만 옷을 입고 방송에 임하는 블랙투쟁 등등.. 지난 8개월여간의 YTN 노조의 투쟁은
정말이지 눈물겨웠다. 그들은 이치에 맞고, 심지어 합법적이기까지한(!) 투쟁을 통해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정당함을
알렸다. 많은 수의 이들이 그들의 투쟁에 박수를 보냈고, 긍정적 결과가 함께하길 간절히 빌었다. 하지만, 도대체
이 투쟁의 끝은 보이지 않았고, 그들은 드디어 총파업이라는 마지막 카드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노종면 위원장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힘을 점점 잃어가던 불씨에 기름을 부은 격인 듯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힘을 쏟으며 강렬히 저항했다. 사측은 자회사 직원등을 통해 그들의 방송 공백을 메꾸어보려
했지만, 아마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광고 수주가 줄고, 정규 뉴스시간이 줄어드는 등 파행은 걷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8개월여를 싸워온 노조측도, 한계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그들도 지쳐 있었던 것이다.

아쉬운 매듭짓기.... 하지만

처음 YTN 노사가 전격 합의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접하고 처음 든 느낌은. '아쉽다'는 것이었다. 노조는 그들의 정당함을
만방에 알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그들은 처음의 목표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생계와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싸웠다. 무려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싸워왔다.
구본홍 사장과 임직원은 회사 건물에 들어가지 못하면 호텔에 가서 시간을 때웠지만, 그들은 그리할 수 없었다.
일방적인 해고통보를 받고도, 징계처분을 받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인사 조치를 받아들고도 그들은 일해야 했고, 동시에
싸워야 했다. 그렇게 8개월을 지내왔다. 그렇다. 그들은 충분히 잘 싸웠다.

이 이야기의 끝이 완벽한 해피엔딩이 되기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적어도.... '그래.. 그래도 괜찮았어'라고 후에
읊조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해고자 6명의 전원 복직과 대통령의 언론특보 출신 사장이 마음대로 방송을 좌지우지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으로..... 그들의 아름다운 투쟁을 마무리하길 바란다.



YTN 화이팅 ! 당신들의 싸움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앞으로도 힘내서 살아가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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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형의 발언과 관련해 썼던 내 첫글과는 달리 이렇게 편한 말투로 글을 써내려 가는 건 그저 그러는 편이 제목과
더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일면식도 없는 주제에, 한국적 정서(형의 말대로라면 형은 그다지 이것에
민감한 것 같지는 않지만)상으로 판단할 때 건방진 자식이라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어.
뭐 어차피, 형이 이 글을 볼 가능성은 굉장히 낮을 거 같긴 하지만.



일단, 난 형이 형의 홈페이지(http://www.shinhaechul.com/)를 통해 밝힌 반박글을 모두 꼼꼼하게 읽었다는 걸 밝혀둘게.
나도 형이 말한 것처럼 "글을 안 읽는 사람보단 대충 발췌 후 편집하는 사람들이 더 재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덕분에,
형이 처음 반박 입장을 밝혔던 2월 28일로부터 무려 4일이나 지난 이후에 글을 쓰게 된 점은 정말로 안타깝게 생각해.
생각보다 형 홈페이지로 손이 잘 안가더라고.

사람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본다

일단 형이 했던 말 중에 절대적으로 동감했던 말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볼게. 맞아. 형은 한 번도 '사교육에 절대적 반대'
라든지, '사교육 시장을 없애야 한다'는 식의 발언은 한 적이 없는 것 같더라. 나도 사실 처음 글을 쓸 때 형이 그런
꼬투리를 남기지 않았을까 싶어서 형이 방송하는 음성 파일까지 찾아서 열심히 들어봤는데 그런 말은 안했더라구.
영어몰입교육이라든가, 입시노동에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확실히 형은 사교육을 폐지해야한다거나 하는 극단적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형이 '사교육을 반대하는 어조'로 이야기를 해왔다고 내 멋대로 형을
재단하려 든 건 정말 미안해. 사과할게. 확실히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찾아서 보는 습성이 있나봐.

사교육이 자동차나 핸드폰 같은 거라고?

형. 그래도 이건 좀 아니라고 봐. 형은 형의 글을 통해서 "사교육이란 자동차나 핸드폰 같은 것"이며 "필요하면 쓰고
싫으면 안쓰면 되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항목이라고 봤어. 정말 그렇게 생각해?
자동차나 핸드폰은 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사람들이 주고 받는 일종의 상품이지. 형의 말은 '사교육'이라는 것도 이 둘과
마찬가지로 '사교육 시장'이라는 곳에서 교환되는 상품이라는 말로 이해돼.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말이지.
그런데 과연 그럴까? 내가 알기로, 적어도 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교육'이라는 건 계급을 만들어내고 재생산하는
효과적인 도구야. 결코 '교육의 공공성'을 거세한 채로 상품이라는 측면한 확대해봐서는 안된다는 거지.
형이 겪었던 불우한 과거를 내면화하고 있는 이 나라의 공교육을 어떻게든 끌고 가려는 노력이 현존하고 있는 건, 모두
그 '공공성'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자동차나 핸드폰은 형 말대로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거지만
교육이라는 건 그렇지 않잖아?

형도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고 있고, 아마 내가 이 말을 쓴 걸 혹시라도 본다면 형 글을 통해서 충분히
이 말을 펼쳤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어질 거야. 하지만, 형이 말한 건 단지 '공교육'에 한정된 것이었고, 교육전반의
공공성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질 않았어. 형은 기본적인 공공재인 교육의 면은 공교육이 담당하고, 그 이상을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하여 사교육으로 자신의 가려운 곳을 긁으면 된다는 식으로 얘기했어.
근데 과연 공교육과 사교육이 그렇게 절묘하게 나눠질 수 있을까? 또, 사교육이라는 게 정말 가려운 곳을 긁는 식으로
우리 현실에서 작용하고 있을까?

형이 광고를 한 여러 대규모 사교육 업체에서 공교육 현장을 점점 잠식하고 있다는 건 형도 아마 익히 아는 바 일거야.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입시라는 현실에 노출이 되고, 그 입시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서 남들이 다 하는 것처럼 학원에
다니고 과외를 받아. 그리고 학원에서는 학교에서 성적이 잘 나와야 자신들의 실적이 향상되니까, 학교에서 가르칠
것들을 미리 가르쳐. 숙제도 내어주고. 그리고, 학생들은 학원에서 내어준 숙제를 학교 수업시간에 풀고, 학원을
다니느라 부족한 수면시간을 학교 수업시간에 채워. 아무도 듣지 않는 수업시간에 노출된 학교 선생님들은 점점
수업에 대한 흥미를 잃고, 학교 수업의 질은 학원 수업에 비해 점점 더 떨어져가지. 그 때문에 학생들은 더더욱 학원으로
몰려가게 되고 말야. 이게 현재 공교육과 사교육의 현실이잖아. 둘을 분리해서 공교육은 쌀밥이고, 사교육은 현미밥이라는
식으로 얘기할 순 없는거잖아.


그래도 일관성은 필요하다

형의 말처럼 모든 주제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건 이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이고, 독선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이라는 걸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건 형이 더 잘 알거야. 형은 공교육의 폐해에 대해서 일관적으로
날카로운 비판들을 쏟아내왔고, 인간의 일관성에 대한 기대는 그에 대해 '아, 신해철이라는 사람은 현재의 교육 일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구나'라는 것 쯤은 도출해낼 수 있다고 봐.
하지만 형은 형의 반박 글에서 나는 공교육에 대해서 비판적인 견해를 밝혀왔지 결코 사교육에 대해서는 그런적이 없다.
심지어 나는 사교육 종사자였다....는 요지의 얘기를 했어. 그런데, 앞서 내가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공교육과
사교육은 서로 악순환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고, 공교육과 사교육을 엄밀하게 구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 만약 그러한 현실을 간과하고 정말 그 둘이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 거라면 형과 나의 생각틀이 다소
다르기 때문이거나, 형이 현실을 애써 무시하려고 있기 때문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형의 말처럼 사교육에 대한 전반적 비판 견해를 드러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난 분명히 전에 썼던 글에서 그 점을
지적했지만) 형이 마치 그런 말을 한 것처럼 몰아붙여 마녀사냥으로 몰아간 몇몇 언론들과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도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바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올바른 현실 인식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형의 일관성 부재가 이해
되지는 않는다고 봐.

캐리어를 잘못 선택한 것도 분명한 잘못이다

아, 까먹고 지나칠 뻔 했는데, 이전에 썼던 글에서 경제적 이유에서 광고를 찍었을 거라고 내멋대로 예측했던 것에 대해선
사과할게. 형의 경우에는 그게 '모독'에 가깝다고 하니 그건 분명히 사과하고 넘어가야할 것 같아서. 그리고 형이 얘기했던
사교육-공교육 분리론에 대한 앞선 내 견해도..... 좋게 말해 견해의 차이라고 해둘 수 있으니, 이정도로는 솔직히 형이
사과를 한다든지 잘못을 인정한다든지 하기엔 약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라는 것도 솔직히 얘기할게.

하지만, 형의 캐리어론은 분명한 잘못이야. 우리, 인정할 건 인정하자.
형은 "나는 사교육광고 라는 ‘캐리어’를 통해서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라며,
"내가 죄인이라면 나는 ‘확신범’이다"라고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했어. 근데 말야. 형은, 형이 적당한
캐리어를 선택해서 형이 그토록 하고 싶은 이야기를 확실하게 전달했다고 생각해?

감히 내 의견을 이야기 하자면........ 형은 캐리어를 잘못 선택했어. 형이 조선일보 사설에게 까이면서도 조선일보 문화부와
인터뷰하는 건 '조선일보 독자들'에게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거라고 생각해. 그 때에 형에게 '조선일보'는
형의 이야기를 실어나르는 '캐리어'가 되겠지. 근데 이번 경우는 어떨까?
형은 "그만큼 나는 이 광고의 슬로건 -자신에게 맞는 학습목표와 방법의 추구- 가 탐났었다."라고 말했지만, 과연 몇명에게
그 카피를 효과적으로 전달했을까 싶어. 형이 전달한 건 그저 '학원이 특목고에 얼마나 많은 이들은 합격시키느냐'와
'독설가 신해철이 인정한 학원'이라는 암암리의 메세지일 뿐이야. 요즘 유행하는 말로,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더도말고 덜도말고 형은 그 학원에게 이용당한거지. 형이 한 광고와 그로 인한 논란 때문에 그 학원 인지도가 얼마나
올라갔겠어? 형은 그 학원에서 형을 찾아온게 의외였다고 했지만, 아마 광고주가 원했던 건 그런 부분이 아니었을까?

 
(형이 찍었던 광고가 이거 맞지?)


광고가 이렇게 나올줄 몰랐다는 건 변명일 뿐

형은 그저 "다음에 시에프를 찍을 일이 생긴다면 계약서에 광고 최종본을 검열하겠다고 써넣어야 겠다" 정도로 해명했지만
그정도로 이야기하고 말 일은 아니잖아. 자신의 의도를 명확하게 전달하겠다는 핑계로 찍은 CF가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갈지도 보지 않고 OK 했다는 것은..... 게다가, 형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입시 성적을 자랑하고파 '안달이 나있는'
입시학원이 광고주라면 더더욱 그에 대한 의심이 당연했던 거 아닐까? 형, 내가 봤을 때 그거, 살짝 직무유기야.

만약 형이 정말 그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형이 의도하지 않은 광고가 지면에 나가버렸다면, 그 부분만이라도
형을 사랑하고 애정을 가져왔던 이들에게 사과했어야 옳지 않았나 싶어. 솔직히, 형도 형이 특목고 어쩌고 하는 푯말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게 속된말로 매우 쪽팔렸잖아. 그치?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것

이정도면 대충 내가 형에게 하고 싶은 썰은 다 풀어놓은 거 같아. 결론적으로 좀 짧게 요약해서 말하자면, 형을 멋대로
판단해서 형의 소신을 세트메뉴화하려는 의도를 지닌 기사나 포스팅들은 잘못됐다고 봐. 그리고 나는 그렇게 생각
하지는 않지만, 형이 굳이 공교육과 사교육에 대해 분리된 마인드로 다가간다면, 그에 대해 내가 비판하는 것 외에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어? 하지만, 형이 만약 정말로 사교육 광고라는 '캐리어'를 통해 형의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면, 그리고 그 메세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게끔 깔끔하게 포장한 사교육 광고를 내보내는 걸 막지 않았다면,
형은 분명 일정정도의 잘못을 한거라고 봐.
뭐. 내가 그렇다고 해서 형이 죽을 죄를 졌다거나, 당장 국민에게 석고대죄를 해야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아냐.
다만 평소에 형에 대해 애정을 갖고 바라보던 잡팬의 한 사람으로써(음악적 팬은 아니란 건 밝혀둘게) 형이 스스로의
잘못을 멋진 달변으로 얼버무리려 하는 모습을 지켜보기 거북했을뿐이야.

슬슬 날씨가 따뜻해져가네. 이제 정말 봄인가봐. 이런 환절기일수록 감기가 걸리기 쉬우니 부디 건강관리 잘하고,
따뜻한 봄날을 보내며 내가 주절주절 풀어놨던 얘기를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길 바라. 아, 물론 형이 이 글을 본다는
가정하에서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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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헌법 제 39조 1항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 라고.
쉽게 풀이를 해보자면, 저 조항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결국 이런게 아닐까?
별다른 결격 사유가 없는 대한민국 국민은 군대를 가야 한다는 것.


(논산 훈련소 종합각개전투훈련중인 훈련병의 모습)

자. 그렇다면 이 결격사유라는 것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보통의 경우 이 사회에서는 통칭 '신체검사' 라고 불리우는
것을 실시하여 신체적, 정신적으로 군복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을 가려낸다. 현재 1~3급을 받은 이들은
현역병 징집대상이며, 4급은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수행하고, 5급과 6급은 징집대상에서 제외되며 군복무를
직접적으로 수행하지 않아도 되게 돼 있다.

언뜻 보기엔 전혀 문제가 없어보인다. 국가라는 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국가에서 적당한 검사를 시행하여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의무를 부여하겠다는데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하지만 이것에도 사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문제가 있다. 저 '신체검사'의 대상은 오직 생물학적 남성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남자만 군대가는 현실은 확실히 옳지 않다. 하지만

통계학적으로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겠지만, 삼척동자도 쉬이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 생물학적으로 세상의 반은
남자이고, 세상의 반은 여자라는 것(물론 이에 대해서도 보다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글의 문맥을 해칠
염려가 있다고 생각되어 그 논의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 하기로 하겠다.)이다. 돌려서 다시 이야기하면 신체적으로
불편함이 없고, 심각한 정신질환으로부터 자유로우므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에 별다른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들 중에
딱 반절 정도만 군입대라는 국방의 의무 앞에 노출이 된다는 얘기다. 이게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인가?
단지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미성년자라는 굴레를 벗고 세상으로 뛰쳐나와 자신의 꿈을 막 펼쳐보려는 나이에
군대로 끌려가야 한다는 것. 이것은 어떠한 이유에서도 용납될 수 없을만큼 불합리하다
그러나, 그러니까 여자도 군대를 가야한다. 그들에게도 병역의 의무를 지워야 한다는게 올바른 해결책인가?

자, 일단 여자들도 군대에 가야한다. 그들도 병역의 의무를 져야한다는 논의의 출발점에 대해서 살펴보고 싶다.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게 됐을까?

보기 1. 군대가 너무 즐겁고 좋은 곳이라 남자들만 체험하는 것은 불공평하므로
보기 2. 군대가 인생의 고비이자 삶의 장애물인데 남자들만 당하는 것은 불공평하므로

진지하게 1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으라는 법은 없지만, 아마 세간의 논의의 출발점이 되는 심경은 2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군대라는 곳에서는 많은 자유를 속박당하며 그동안 살아온 현실로부터 강제로 격리되고
원하든 원치않든 상명하복의 원칙 속에서 살아가야한다.
그리고 군대는, 직업 군인을 꿈꾸는 이들을 제외한 이들에게
약 2년여의 시간을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상관 없는 환경 속에서 보내게 한다
. 불공평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비슷한 선상에서 출발한 여자들은 취업에 대한 것이든 학업에 대한 것이든 경력에 관한 것이든 저만치 앞서
나아가고 있는데 남자라는 이유로 그것을 멍하니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사실 군대에 있는 동안은 제대로 지켜보기
조차 힘들다. 이를 두고 어찌 불공평하다하지 않다 할 수 있겠는가?


(군인들의 일용할 양식 건빵. 출처 : http://blog.naver.com/stirrup9)

결국, 문제는 이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자, 이러한 억울함에 대해서 긍정을 하였으니 이에 대한 해결책이 있어야 마땅하겠다. 어떠한 해결책이 있을 수 있을까?
일단, 많은 이들이 얘기하듯 여자도 군대를 감으로써 이러한 불공평함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이
단절되고 군대문화를 경험하며 소위 '뺑이를 쳐야'하는 것이 남자들만의 문제가 아니게 될테니까. 여자들은 군대를
다녀옴으로써 병역의무를 수행한 '진정한 국민'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얻게 될지 모르며, 남자들은 더이상
상대적 박탈감에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해결 방법인가?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각종 학대를 당하며 자라 그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나중에 성인이 되어 그가 다른 이들과 어렸을 때의 일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자신처럼 부모님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란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는 억울함을 느꼈다. 단지 자신은 운이 없어서 부모님을 잘못 만났을 뿐인데,
그것 때문에 어떤 이들은 겪지 않는 학대를 견디며 자라야 했고, 그에 대한 트라우마로 남은 평생을 괴로워 하며 보내야
할지 모른다. 자,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아마, 그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건전한 사회를 위한 노력
을 하여, 학대 받는 아이를 위한 사회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는 자신과 같은 불행한 이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만약, 모든 아이들이 학대받음으로써 그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해야한다는
이가 있다면 대부분의 이는 그 의견이 당치도 않은 궤변이라 생각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 논의를 군대 문제에 관해서는
적용할 수 없을까? 학대를 군대로, 학대받은 이를 군대를 다녀온 이로 치환하면 자연스레 '모든 아이들을 학대해야 한다'
는 궤변은 '모든 여자들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이야기로 바뀌어 버린다.

-1 에 -1을 하면 -2가 될 뿐이다

앞서 든 예가 다소 과격하다보니 꼭 그렇게 예를 들어야겠냐며 반론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맥락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지 않은가? 결국, 현재의 좋지 않은 상황을 다른 사람도 좋지 않은 상황을 겪게 함으로써 해결하려 한다는 것은
군대가 아닌 다른 상황에 대입해보면 명백한 오류이며 궤변이다.
하지만 어째서 군대 논의에서는 이러한 일반론이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이상하지 않은가?

예전에는 사실, 남자들만 군대를 가도 불공평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남자들이 의무를 지는만큼, 남자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권이 갈수록 신장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평등사회에 대한 모든 이들의 염원이
사회 제도로 드러나면서 기존에 누리던 '남성들만의 권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도 남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많지만, 이전에 비하면 굉장히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니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권리는 가면 갈수록 희미해
지는데, 군대라는 '의무'는 너무나도 또렷하게 남아 남자들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박탈감이 군대라는 논의에서
일반론의 대입을 방해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1에 -1을 더해도 -2가 될 뿐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사라질지 모르지만, 결코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현실적으로 +1이라 할 수 있는 대안이 없지 않느냐고 주장한다면, 그에 대해 진지한 탐색을 해보긴 하였느냐고 되묻고 싶다.
사실 근본적인 대책은 너무나도 자명하다. 모병제로의 전환이다. 현재의 징병체제가 모병제로 전환되고, 모병에 있어
여자와 남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한다면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문제는 물론 시간의 단절, 자기 계발에 대한 장애와 같은
문제들이 일거에 해결이 된다. 군대에 가고 싶은 사람이 군대에 간다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겠는가?

물론, 모병제로의 전환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전환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것도 뻔한 일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하여서 궁극적 해결책으로 가는
길이 아닌 샛길로 빠진다면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므로, 여성들이여 군대를 가라! 라고 외치기보다는
이토록 불합리한 상황을 방치하는 정부에 항의해야 한다.

모두가 구정물에 발을 담그는 대신 구덩이를 메우자

정부는 현 병력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에 대해 철저하게 따져보아야 할 것이며,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대북 관계를 정상화시켜 군축협상에 돌입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한 현재의 휴전협정을 종전선언
으로 이끌 수 있도록 최선을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노력을 해나가는 데 있어 현재의 불합리한 상황이
부득이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는 데 대해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현재도 일부 적용이 되고 있지만, 군복무에 대해
취업 후 일정 경력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며, 군복무 중에도 자기 계발의 끈을 완전히 놓지 않을 수 있도록 모든
대책을 강구해야할 뿐 아니라, 전역 후 사회의 재진입이 용이할 수 있도록 합당한 교육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할것이다.
또한, 신체적 정신적 결격사유뿐 아니라 양심적 거부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자면, 어떠한 이가 구정물이 고인 구덩이에 발을 담갔다고 해서, 모든 이가 그 물에 발을 담글 필요는 없다. 그저 그 물을 구정물이 아닌 깨끗한 물로 만들면 될 뿐이며, 근본적으로는 그 구덩이를 메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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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모토로 한 '살인의 추억' 포스터)

군포 대학생 살인사건의 후폭풍이 여전히 거세다. 초기에 용의자 강호순의 신상명세며 각종 신변잡기에 쏟아지던 관심은
청와대가 연쇄 살인 사건을 통해 용산 참사를 숨기도록 지시했다는 문건이 등장하며 또 다른 국면을 맞게됐다.
이제 그러한 문건이 존재한다 아니다의 여부는 논란이 끝이 난 모양이고, 그 문건이 과연 개인적인 불찰이냐, 아니면
청와대로부터 영향을 받은 권고의 하달이냐를 두고 공방이 치열하다. 정황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후자 쪽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결과가 어찌되든 군사독재 시절의 여론 통제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곧 개봉을 앞둔 영화의 제목이 머리를 스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간은 거꾸로 간다나 뭐라나.

이런 사회를 들썩이는 논란을 일으키는 군포 대학생 살인사건에 대해 필자는 조금 다른 견해에서 논의를 진전시켜보고자
한다. 어쩌면 필자가 사용하는 '군포 대학생 살인사건'이라는 통상적이지 않은 이름에서 이미 의도를 눈치 챈 이도 있을 지
모르겠다.

씨프린스호 사고 vs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논의를 진전시키기에 앞서 먼저 '이름짓기'의 위력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름을 짓는 것에는 마땅히 이름을
짓는 사람의 의도가 들어가게 마련이다. 최근 용산에서 발생한 일에 대한 이름 짓기만 해도 그렇다. 철거민의 과격한
시위가 사건의 원인이라 보는 이들은 '도심 테러', '용산 철거민 사태' 라 부르고, 경찰의 과도한 진압이 원인이라
보는 이들은 '용산 참사', '용산 철거민 살인집안사건' 이라 부른다.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에 따라 완전히 사건의
본질이 다르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씨 프린스호 사건을 겪었던 여수 주민들이 태안에서 방제 활동을 벌이는 모습. 출처 : 연합뉴스)

이와 비슷한 예로 '씨프린스호 사고'와 '태안 기름 유출 사고'에서 드러난 작명 의도를 들 수 있다. 95년 여수 앞바다에서
발생한 '씨프린스호 사고'는 최근 발생한 '태안 기름 유출 사고'와 자주 비교될 만큼 해양 생태계와 인근 해안의 주민들
에게 재앙으로 다가온 사건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수상한 냄새가 난다. 분명 비슷한 사건인데 전자는 당시의 사고 선박의
이름이 선명하게 기재되어 있는데, 후자에는 사고 선박의 이름은 쏙 빠지고 사고가 난 인근 지역의 지명만이 나타나 있다.
덕분에 태안 사고의 선박 이름이 허베이호이고, 허베이호가 현대의 소유이며, 삼성중공업 소유의 크레인과 충돌하며
기름 유출사고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태안 기름 유출 사고'라는 이름에서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사고의 이름이
'의도적'으로 지어진 것인지, 우연히 그리 된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두 '작명 기법'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군포 여대생 살인 사건 vs 군포 대학생 살인 사건

자. 이제 본격적인 논의로 들어가보자. 군포 보건소 앞 버스정류장에서 한 대학생이 연쇄 살인범에게 납치되어 살해당했다.
연쇄 살인범은 남자였고, 대학생은 여자였다. 그리고 그에 대해 이렇게 이름 붙인다 '군포 여대생 살인 사건' 이라고.
여기서 하나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만약 이 사건이 '군포 대학생 살인 사건' 이라 이름 붙여졌으면 어땠을까?

살인 사건의 피해자는 대학생이다. 그렇다면 사실 '군포 대학생 살인 사건'이라고 이름 붙여도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꽤 있을 거라 생각된다. 왜일까?

한국 사회에서 대학생은 철저하게 행동하는 자였다. 민주 항쟁의 주인공이고,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원동력을 주는
젊은 피였다. 하지만 여자 대학생은 어떠한가? 여대생은 항상 당하는 자였다.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촛불 시위에서 쓰러진 채 폭행당하는 존재였으며 연쇄살인의 표적이 되는 대상이었다. 그렇다. 여대생은 대학생이기
이전에 여자였으며, 이 사회의 남자들이 보호해야할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명쾌해진다.
왜 살인 사건의 이름 짓기에 '대학생', 이 아니라 '여대생'이라는 단어가 쓰이게 됐는지.


(영화 '아는 여자' 스틸 컷 중에서)

수동성의 이름으로 그들을 가두지 말라

남교수란 말은 없어도 여교수라는 말은 자주 쓰인다. 일반 남자 중고등학교는 결코 'OO남고'라는 식으로 이름이 지어지는
법이 없지만 대부분의 여자 중고등학교는 'OO여중, OO여고'라는 식으로 이야기 된다. 남대생이란 말은 대학생으로 대치
되지만, 여대생은 결코 대학생이라는 말로 완전히 대치될 수 없다.

이름을 짓는 행위에는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어떠한 의도가 담기게 마련이다. 특히 '여자'라는 이름의 수식어는 어떠한
대상을 수동적이고 소수의 힘없는 존재로 전락시키는데 탁월한 역할을 한다. 비교적 진보적인 색채를 가지고 있다는
언론의 인터뷰에서도 대학생 OO군과 여대생 OO양은 자주 구분이 되곤 한다.

그래서는 안된다. 여자라는 이름을 수동성의 틀에 가두어서는 안된다. '군포 여대생 살인 사건' 이라는 이름 짓기는 자연스레
"연약한 여성을 죽인 연쇄살인마를 홍보해 가난한 서민의 죽음을 묻으려고 한 범죄행위(민주당 서갑원 부대표 - 2009년
2월 26일자 경향신문(4면) 보도 중에서)" 라는 담론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며, 여성이라는 존재를 남성에 의해 보호받아야할
유약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우리는 여대생이 쓰러진 채 폭력을 당했기에 분노할 것이 아니라, 한 인격체가 무참한 공권력에
짓밟힌 것에 분노해야 한다. 우리는 꽃다운 여대생이 연쇄 살인범에게 살해되었기에 분노하기보다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삶의 권리를 무참히 빼앗겼다는 데 분노해야한다.
언젠가 여교수라는 말이, 여대생이라는 말이 어색하게 다가올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의 생각을 가두는 그 수동성의 틀을 부숴버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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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신해철씨가 모 사교육업체 광고를 찍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 학원 광고 찍는게 뭐가 그리 대수냐 할 수도 있겠지만(이자율이 거의 50%에 육박하는
대부업 광고도 무분별하게 찍는 상황에서.......) 평소 그의 행동과 발언들에 비추어볼 때
상당히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다. 도대체 그는 왜 그랬던걸까?



그는 자신의 미니홈피를 통해
'CF 역시 아티스트에겐 표현의 일종'이며 '광고 출연은 평소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의 연장' 인데다가 '평소 내
교육관과 충돌하는 부분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세한 것은 다음에 올릴 글을 통해 해명하겠단다.
이쯤되면 아테네의 소피스트들도 울고갈만한 궤변이다.

사교육 반대와 특목고 진학 보장이 양립 가능하다고?

평소에 그가 여러 매체와 방송을 통해 사교육과 대해 비판적 견해를 비춰온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다.
지난해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교육 현실은 청소년을 학대하는 정책들로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며
'미래에 대한 꿈이나 목표도 없이 입시 노동을 강요해 수백만 아이들과 학생들의 인생을 망쳐놓고 있다' 고
독설을 퍼부어댄적도 있다.

이건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 광고에서 특목고 OO명 합격을 자랑하는 현수막을 펼쳐보이는 신해철과
위 발언에서의 신해철의 모습을 조합해보면. 결국 그가 우리 나라의 청소년들이 가져야 한다고 얘기했던
'꿈과 목표'는 특목고와 명문대란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는 그의 해명처럼 그저 '아티스트의 표현'을 하고
있을 뿐인가? 아티스트의 정의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자아가 분열된 사람'이 아니라면 이것 역시 궤변에
불과하다. 일반에 허락되지 않는 언어적 일탈을 시에 한해 허락하는 '시적 허용'처럼, 일반에 허락되지 않는
궤변을 아티스트에게 허락하는 '예술가적 허용'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차라리 그냥 배가 고팠다고 말하라.

언젠가 그가 방송에 나와 '방송생활 동안 남은 건 빚뿐' 이란 요지의 발언을 한 것을 기억한다. 생존은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다. 결국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닌가?
개인적으로 그가 단지 '입시 학원 광고'를 찍었다는게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현실에서, 사교육 전체를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적은 없는(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없다) 그가 사교육 업체의
CF라고 해서 찍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 사교육 업체의 CF가 학벌주의를 조장하고 특목고, 명문대를
많이 보냈다는 것을 통해 자신을 홍보하는 것임을 알았더라면 최소한 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평소의 자신의 신랄하고 비판적 모습을 사랑하던 팬들에게 조차 충격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목도했다면, 그에 대한 적절한 해명을 했어야 했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일지라도) "CF가 그런 식으로 나갈 줄은
몰랐다." 는 정도의 해명이었다면, 적어도 어느정도 수의 사람들은 수긍시킬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건 정말 아니다. 일반의 상식이라는게 존재한다면, 그 상식을 통해서는 이러한 상황을 도무지가 이해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또한 그의 해명은 지나간 유행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쌩뚱맞기' 그지 없고, 그가
자신있게 다른 이들을 향해 '착각' 이라며 이야기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도무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

빠른 시일 내에 적절한 해명을 하길 기대하며

언젠가 여자와 남자 사이의 학력 차이로 인해 남녀합반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퍼지고 있다는 얘기를 나누는
모 TV 프로그램에 그가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곳에서 그가 '과연 남자가 여자들보다 학력이 우월했다면
이런 논의가 나오기나 했겠냐?'며 반문하는 것을 봤다.
속된 말로 '쪽팔리지만' 정말 그 때 신해철이라는 사람에게 반해버렸다. 그 한마디야말로, 그동안 수없이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그 논의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카운터 펀치였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차 트렁크에 부인에게 입힐 교복을 싣고 다녀도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농담).

그랬던 그가, 저런 치졸한 변명을 늘어놓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뭔가가 있겠지 하고, 차라리 믿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하루바삐 그의 적절한 해명이
나오길 바란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봤을때, 해철이형. 이건 정말 좀 아닌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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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 대학생 살인사건의 용의자이자 그 이전에도 여러 건의 살인을 저질러온 강호순씨가 검거된 지
어느덧 2주가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온갖 언론 매체들은 그와 관련된 추측과 사실, 흥밋거리를
수없이 쏟아냈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동안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했던 용어 하나가 굉장히 친숙하고
흥미로운 것으로 둔갑해 우리 앞에 서게 됐다. 바로 '싸이코패스'다.

'싸이코패스'라는 말은 ''정신병질자 (精神病質者), 정신병자 (精神病者). 반사회적 인격을 가진 사람'
으로 정의된다(출처 : DAUM 사전 검색 Psychopath).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감정'이 결핍돼 극단적인
흥밋거리(살인 등의)를 추구하며, 보통의 경우 지능이 매우 뛰어나 주위에서 잘 알아차리가 어렵다고
한다. 미국 등에서는 이미 싸이코패스에 대한 연구가 상당부분 진행 중이라고 하며, 싸이코패스를
소재로한 TV 드라마 (덱스터(Dexter))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강씨에 의해 대중에 널리 알려지게 된 싸이코패스라는 개념은 그야말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여당의 모의원에 의해 인용되어 야당을 공격하는 데 이용되는가 하면, 인터넷 상에 각종 싸이코패스
진단법이 유행하고 있고, 언론 등의 매체에서도 싸이코패스를 조명하고 밝히는 데 많은 것을 할애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자연스레 싸이코패스는 구제불능의 인간형이며, 그를 어찌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
하지 않는다는 일반론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강씨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 유력시 되는 용의자이며,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싸이코패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것이고,
그것은 강씨 개인의 목숨을 앗으므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일단 싸이코패스라는 개념이 확실히 강씨에게 적용하여도 무리가 없는 개념인지 불분명하다. 시사IN
73호에 p57에 실린 국과수 강덕지 과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싸이코 패스라는 개념은 '우리와 문화적
환경이 다른 미국식 개념'이라고 한다. 확실히 상이한 문화적 환경에서 발생한 현상이나 사건의 경우
각각의 환경에 맞는 적절한 분석틀이 필요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둘째로, 강씨가 싸이코패스라 가정한다 해도 그 모든 책임을 강씨 개인의 문제로 덮어씌울 수는 없다.
근대 이후 국가의 가장 주요한 기능 중 하나는 치안의 유지이다. 하지만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여러 사건이 발생한 경기 서남부 일대의 치안은 여러가지 핑계로 '방치'되고 있다고 해도 무방
한 상태에 있다. 비록 강씨가 싸이코패스이며 연쇄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개연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라고 하여도, 그를 사전에 막지 못한 국가에게도 엄연히 책임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 책임을 사형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다. 사형은 여러 연구와 조사를
통해 그 본래의 목적인 '범죄 예방'에 그다지 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한,
중범죄자를 교화시켜 남은 그의 인생을 반성과 성찰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서 이야기된
'국가의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는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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